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열린 텀블러 판매 이벤트에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문구를 사용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9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날 회사 차원의 사과문 발표와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 대표 해임에도 논란이 지속되자, 정 회장이 직접 머리를 숙인 셈이다. 정 회장의 극단적 정치성향이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친 오너 리스크의 현실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려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이번 사안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오신 모든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하며, 어떤 해명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 회장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후속 조처를 약속했다. 우선 이번 사태의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정 회장 본인을 포함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을 전면 실시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신세계그룹은 5·18단체에 직접 사죄의 뜻을 전하기 위해 김수완 신세계그룹 부사장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5·18단체는 ‘보여주기식 방문’이라며 만남을 거부했다. 김태찬 5·18부상자회 부회장은 “젊은 직원이 실수했다는 신세계 쪽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결국 보여주기식 사과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조직 내부에 고착화된 오너 리스크가 현실화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장은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멸공’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노출했고, 미국 보수 기독교계의 극우 논리를 한국 개신교계에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 ‘빌드업코리아’ 행사에 후원하는 등 개인적 정치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논란을 거듭한 바 있다. 이러한 오너의 편향적 인식이 반복적으로 표출되면서 사내 스크리닝 시스템 마비 또는 임직원들의 암묵적 동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이벤트는 스타벅스코리아 기획 부문에서 진행한 것으로, 실무자 기획안을 두고 관련 부서 회의, 임원급 검토까지 다단계 검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수차례 논의 과정에 리스크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스벅코리아는 전사적 행사를 할 때 정 회장의 승인 없이 가능한 회사인가. 정 회장의 작품이 아니라면 그동안 ‘멸콩’ 파문, 세월호 조롱 등을 보아온 간부들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바뀐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앞서 스타벅스는 지난 18일 ‘탱크 시리즈’ 텀블러 판매를 시작하며 온라인 홍보 페이지에 ‘탱크데이’ ‘5/18’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함께 표시했다. 이를 두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탱크 진압,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당시 치안본부 발표 내용이 연상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민사회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확산됐고, 이재명 대통령은 “공동체와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비판했다. 신세계그룹은 광주 광천버스터미널 부지에 총 3조원을 투자해 백화점, 5성급 호텔, 공연장, 의료시설이 집약된 미래형 복합도시 ‘더 그레이트 광주’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빈 김용희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