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카소 너머의 입체파 미술(큐비즘)을 제대로 훑어본다.
이런 특장을 내세운 대형 미술사 전시가 서울에 도착했다. 세계 굴지의 근현대미술 전시기관인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한국분관으로 다음달 4일 일반 관객들 앞에 문을 여는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 기획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의 전시 현장이 19일 오전 언론사 취재진에 사전 공개됐다. 1907년 거장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처음 창작의 물꼬를 튼 이래 20년 이상 지속되며 서구 현대미술의 서막을 연 큐비즘 미술의 20여년 역사를 숱한 작가들의 그림과 영상, 조각들을 통해 펼치는 자리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화그룹 한화문화재단 산하 미술관으로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옛 아쿠아리움을 프랑스 건축 대가 빌모트가 리모델링한 전시관 안에 문을 열었다. 크리스티앙 브리앙 파리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와 퐁피두센터 한화의 조주현, 서지은 큐레이터가 협업해 만든 이번 개관전은 2030년 재개관을 위한 내부 공사로 문을 닫은 파리 센터의 큐비즘 관련 명작들을 대거 가져와 선보이지만 단순한 명작 잔치에 머문 틀거지는 아니다. 큐비즘이 태동한 1907년께부터 말기를 맞은 1927년까지의 전개 과정을 조망하고, 20세기 미술의 전환점이 된 큐비즘의 의미를 동시대의 눈으로 새로이 살펴보는 기획이라는 설명이었다.
입체파의 대명사로 떠올리는 피카소, 브라크 말고도 페르낭 레제, 프랑시스 피카비아, 로베르 들로네 등 숱한 입체파 대가들의 작업들이 시기별로 망라되어 나왔고, 말미에는 입체파 영향을 받은 김환기, 유영국, 구본웅 등 근대기 조선의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갈무리해놓았다.


1층에 들어가면, 로비에 말의 몸뚱아리와 기계장치를 융합시킨 모양새로 세워놓은 ‘대형말’이란 레몽 뒤샹의 1914년 작(1976년 재제작) 조형물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긴다. 말 탄 기수와 달리는 말을 결합시켜 전방으로 기울어진 단일 현상을 만든 이 작품은 기계적 형태에서 영감을 끌어온 미래주의적인 작품으로 큐비즘의 미학과 잇닿는 맥락을 지닌다. 작가는 개념미술의 시조 마르셀 뒤샹의 형인데, 동생 뒤샹이 60여년 뒤 확대본을 만들었다는 내력도 흥미롭다.
큐비즘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작품에 담지 않고, 다양한 시점에서 본 이미지를 화면에 재구성해 근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격변한 시각적 경험과 감각을 반영한 사조다. 작가 54명의 작품 112점이 나온 이번 기획전은 이런 맥락을 깔면서도 지역과 성향, 매체 등에 따라 다기한 갈래를 치면서 펼쳐진 국제적 예술운동으로 바라보는 틀거지를 띤다.

전시장은 ‘대형말’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면 나타난다. 각각 500평(1652㎡)의 넓이를 지닌 1·2전시실에 유연한 곡선형의 가벽과 동선 구조로 출품작들이 내걸리거나 배치되어 있다. 1전시실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창안한 초창기 큐비즘의 면모를 보여주는 1섹션부터 본격적인 분석적 큐비즘의 과정을 거쳐 살롱 전시로 대중화하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유파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상 등을 조명한 2~6섹션까지 다채로운 전개 과정을 드러낸다. 특히 국내에서 크게 소개되지 않았던 큐비즘의 중후반기 흐름을 집약해 다룬 것이 돋보인다. 1섹션에서 입체파의 태동을 알린 대작 ‘아비뇽의 처녀’(1907)에 나오는 아프리카 여인의 모티브를 단독으로 그린 피카소의 흉상 그림과 브라크의 누드·풍경화 등의 초기 실험작들은 유명한 명작들이다. 하지만 색채와 리듬이 물결치는 소니아 들로네의 오르픽 큐비즘, 대중 전시와 이론을 통해 확산된 살롱 큐비즘, 기계의 형상과 역동성을 대폭 반영해 전쟁을 예시하는 듯한 무기를 묘사하거나 공중전투 장면을 색면으로 형상화한 1차 대전 전후 큐비즘의 양상들이 국내 전시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곤차로바나 라리오노프 같은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들과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이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내놓은 색채감각 돋보이는 추상풍의 회화들이나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도면 같은 작품들을 통해 다기한 조형의식과 시대별 지역별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를 지으며 분화한 큐비즘의 역동적 단면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2전시실은 아래층과 위층으로 나뉜 복층 구조인데, 아래층은 7~8섹션의 작품들이 채웠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큐비즘에 미친 여파들과 이후 1920년대 일종의 양식으로 정착되면서 아르누보, 순수주의, 신고전주의와 얽혀드는 양상들을 다루고 있다. 피카소가 1924년 파리 시갈 극장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메르퀴르’ 발레 무대의 막 작품은 이런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으로 꼽힌다.
별개로 위층에는 ‘코리안 포커스’란 제목의 특별 섹션을 만들었다. 1930년대 일본을 통해 조선의 미술인들에게 전파된 큐비즘이 당대 식민지 문화예술계에 미친 파장을 당대 잡지 등의 인쇄물과 김환기, 유영국, 구본웅의 작품들을 통해 소개하고 1950년대 전쟁 이후 현실의 표현을 위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 입체파적 요소들을 박래현, 함대정 등의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크리스티앙 수석 큐레이터는 “첫 전시를 큐비즘 주제로 잡은 건 퐁피두센터의 가장 핵심적인 컬렉션이라는 점과 20세기와 지금 세기 동시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위미술의 선구란 점을 함께 감안한 결과이며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전시라는 점도 뜻깊다”며 “세상을 다르게 보려 했던 큐비즘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감각을 한국 관객들이 새롭게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정당성 논란도 불거졌다. 국내 33개 문화예술단체와 기후·평화단체들이 퐁피두센터 한화의 전시 재원을 문제 삼는 성명을 지난 15일 발표하고 개관전 반대 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계열 방산업체(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들이 팔레스타인 학살과 연관되는 이스라엘 군수업체와 협력해 무기를 제조하며 전쟁 산업과 생태 파괴에 연루됐는데도 퐁피두센터 한화 전시 자금의 상당 부분을 대면서 윤리적 책임을 흐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19일 오전 여의도 전시관 앞에서 ‘아트워싱 중단하라’ ‘피 묻은 자본으로 예술하지 말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앞으로도 집단행동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