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필 | 사회부장
모든 권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검찰을 가지려 했다. 시간의 풍화작용에서 살아남은 건 늘 검찰이었다. 끝이 좋았던 대통령 일가는 없었다. ‘대통령 퇴임 후 잔혹사’로 상처받은 여야 권력은 집권할 때마다 검찰개혁의 메스를 들이댔고, 이재명 정부에선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수술 대신 호흡기를 떼기로 한 것이다.
사망선고 날짜를 받아 든 검찰 역할은 특검이 대행하고 있다. 특검법 단독 통과가 가능한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수사 대상과 특검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활용 안 할 이유도 없다. 3대 특검(내란, 김건희, 채 상병)에 이어 종합특검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쿠팡·관봉권 특검도 조연으로 등장했다. 예외적 제도인 특검이 연중 가동되는 모양새다.
특검의 평가는 명암이 교차한다. 수사 성과의 이면에 검찰 못지않은 문제적 장면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별건 수사로 인한 공소기각 판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 강압 수사, 야당 편파수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종합특검팀 특검보는 김어준씨 방송에 출연해 “곧 원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며 수사 브리핑의 뉴노멀을 보여줬다. ‘상대편’을 수사할 땐 내로남불의 알고리즘이 작동해 인식하기 어렵겠지만, 실체적 진실을 좇는 수사 행위는 인권과 경합하지 공존하지 않는다.
6·3 지방선거 뒤엔 또 다른 특검이 예고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한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총 12개 수사 대상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8개(1심 6개, 2심 1개, 파기환송심 1개) 사건의 재판을 지우려는 ‘공소취소 빌드업’ 특검이라고 비판한다. 법정에서 증거조사와 판사 심증을 거쳐 무죄로 바로잡는 사법시스템을 패싱하고 인위적으로 재판을 종결시키는 길을 열어놨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피고인인 사건의 공소취소를 결정할 특검을, 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이해충돌 논란까지 불거졌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특검에 공소취소권을 부여한 조처에 ‘반대 의견’(44%)이 ‘찬성 의견’(27%)을 크게 상회했다.
정치권에선 법정이 재판 자체의 취소까지 거론되는 거대한 공방의 소재로 소비되고 있지만, 법과 현실의 사각지대에 놓인 성소수자에겐 목소리 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공간으로 대비된다. 지난달 27일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에선 동성부부 박여진과 황희연의 이른바 ‘혼인평등소송’(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 소송) 심문기일이 열리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법원은 당사자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절차 없이 혼인평등소송을 기각·각하해왔는데, 이날은 2015년 이후 11년 만에 심문기일이 잡힌 것이다. 재판부는 혼인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고충을 물었다고 한다. 이들의 대리인은 “당사자들이 직접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누구나 누리는 최소한의 절차적 권리가 이들에겐 아주 특별한 기회다.
박여진의 아버지는 재판부에 낸 진술서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물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용기와 헌신에 과연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서로 다른 점에 집중해 차별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옳음에 집중하며 포용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이 사안의 본질을 이보다 더 정면으로 꿰뚫는 질문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현행 민법상 동성부부의 법적 지위가 인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들의 묵직한 울림은 법정을 통해 세상과 조금씩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가진 사람에게 평범한 일상이, 없는 사람에겐 축복의 연속이기도 하다.
법정을 찾는 이들은 모두 자기를 증명하려고 한다. 형사사건에서 검사는 유죄를, 피고인은 무죄를 호소한다. 민사사건에서 원고와 피고는 사적 이해관계의 우위에 서려 한다. 처지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절차를 따른다는 점이다. 박여진과 황희연은 1심에서 지면 항소해 2심 판단을 구하고, 또다시 지면 상고해 3심에서 다툴 것이다. 그래도 최종 패소하면 결과에 승복할 것이다. 이것이 사법시스템을 만들며 우리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재판에서 지더라도 그것이 관계의 실패나 틀림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여준 용기와 헌신이 옳았음을” 삶으로 증명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