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녹지·수공간 늘렸더니 저소득층 쫓겨났다…‘기후 적응’의 역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속 녹지·수공간을 늘리는 정책은 기존 저소득층의 주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기후변화의 주된 피해자는 농민과 빈곤국,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처로부터도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녹지를 조성하면 집값이 올라 살던 지역에서 내몰리는 식이다. 아프리카 지역을 대상으로 이 같은 역설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김승겸 에아이이(AI)미래학과 교수 연구팀이 북경대, 뉴욕상하이대 연구진과 함께 기후적응 정책이 도시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배제 압력을 유발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역설’을 규명해, 최근 국제저널 ‘네이처 시티즈’에 논문으로 게재했다고 18일 밝혔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32개국 221개 도시권의 5503개 행정단위를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24년까지의 변화를 추적했다. 도시에 공원을 조성하거나 습지·하천을 복원하는 등 녹지와 수공간을 인프라로 확보하는 것은 홍수나 폭염을 막기 위해 필요한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조처로, ‘그린-블루 적응’(Green-Blue Adaptation)이라 불린다. 연구팀은 위성영상 등을 통해 녹지·수공간 확대가 이뤄진 지역을 확인하고, 사회경제적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 도입 전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석했다.

아프리카 도시별 그린-블루 적응 지수(오른쪽)와 젠트리피케이션 지수의 연평균 변화율.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분석 결과, 녹지와 수공간 인프라가 도입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주택가격이 13%, 가구소비가 20.3% 상승했고, 외부에서 인구 유입도 유의미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상승과 외부 인구 유입이 동시에 진행되면,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기존 저소득 주민은 지역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연구팀은 그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주거시장, 소비, 소득, 인구구성 변화 등을 함께 포착할 수 있는 ‘종합 젠트리피케이션 지수’를 만들었는데, 기후 적응 시설이 조성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이 지수가 평균 4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수와 폭염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려고 조성한 인프라가, 바로 그 주민들의 거주 기반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역설”을 확인한 것이다.

김승겸 교수는 “지금까지 기후 적응은 주로 ‘홍수와 폭염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문제로 다뤄졌는데, 이번 연구는 앞으로의 기후 정책이 ‘누가 더 안전해지고, 누가 더 불안정해지는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자평했다. 또 기후 적응 정책에 뒤따르는 이 같은 역설은 정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완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임대료 규제만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 압력을 충분히 줄이기 어려웠던 반면, 재정착 지원 체계가 갖춰진 지역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완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기후 적응 사업이 단지 녹지·수공간을 조성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토지권 보호, 공공주택 공급, 재정착 지원과 같은 주거 안정 장치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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