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파키스탄 이어 중국도 '통항 규칙' 준수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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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에 대한 '허가제'를 공식화하기 위해 사례를 하나씩 늘려나가고 있다.
그간 공해가 아니었으나 자유로운 통항이 가능해 전세계 에너지 수송의 동맥으로 역할했지만 이번 중동 전쟁으로 이란이 정한 규칙(프로토콜)을 지켜야 통과할 수 있는 길목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라크와 파키스탄이 이란과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운송로를 확보했다고 12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의 원유 200만 배럴씩을 실은 유조선 2척이 이란의 '통항 허가'를 받고 10일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 로이터는 이라크가 추가 통항을 위해 이란의 허가를 받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는 호르무즈 해협 우회로를 어느 정도 확보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 주요 산유국과 달리 지리적으로 걸프 해역(페르시아만) 안쪽 끝 바스라항구를 통해야 원유 대부분을 수출할 수 있다.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원유를 수출할 수 없게 되자 이라크의 산유량은 2월 하루 419만 배럴에서 3월엔 163만 배럴로 61%나 급감했다. 이라크는 정부 재정의 95%를 원유 수익에 의존하는 터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하더라도 '생명줄'인 원유 수출을 우선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파키스탄 역시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합의했고 이에 따라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유조선이 파키스탄을 향해 항해 중이다. 파키스탄은 여름철 냉방용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LNG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협정을 이란과 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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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 선박도 13일 밤부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란이 정한 통항 규칙을 준수하기로 하고 일부 중국 선박의 통항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일단 14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란의 제스처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란이 정한 통항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한다면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는 주요 사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컨설팅업체 MST 마키의 사울 카보닉 조사본부장은 로이터에 "해협 통과를 위해 이란과 기꺼이 거래하려는 정부가 늘어남에 따라 이란이 더욱 영구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게 될 것이라는 발상이 정상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란이 정한 통항 규칙은 선박의 목적지, 화물 종류·수량, 소유관계 등 상세한 내역이 적힌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이란 당국이 정한 해로를 이용해야 하는 내용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을 실효적으로 통제하게 되면 이란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그리고 즉시 봉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란으로선 세계 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14일 "가자지구 전쟁과 지난해 12일 전쟁 전까지 이란의 전략은 주로 탄도미사일, 드론, 저항의 축 등 3가지가 억제력과 전력의 투사 도구였다"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그 주변의 해군 자산은 이들 3대 축의 부차적인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ISW는 "이란이 (이제) 호르무즈 해협을 점점 더 강조하는 건 향후 이란의 전략과 억제력의 중심은 이 해협이어야 한다는 광범위하고 새로운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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