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라 | 소설가
스페인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18일,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바르셀로나에서 ‘민주주의 수호 회의’를 진행했다. 이 회의에는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등 좌파에 속하는 국가 정상 다수가 참여했다.
나는 문학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일주일 뒤인 24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민주주의 수호 회의’는 이미 끝났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 열렸으니 주말에는 관련된 집회가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26일 일요일, 피카소미술관에 가던 길에 내가 바라던 대로 전쟁에 반대하는 행진단을 마주쳤다. 레바논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 그리고 방송 차량에 크게 내걸린 현수막의 ‘전쟁에 반대한다’(No a la guerra)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나는 이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티셔츠도 입고 나간, 준비된 참가자였다. 집회 참가자들을 따라 ‘하우메 1세’ 지하철역에서 성 하우메 광장까지 아주 짧은 거리를 행진했다. ‘하우메 1세’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카탈루냐 노동조합 건물에는 팔레스타인 국기 그림 사이에 ‘인종학살 반대’(No Genocidi)라고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성 하우메 광장에서 방송 차량이 멈추었고, 마이크를 잡은 중·노년 여성 지도자의 발언을 들었다. 물론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니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전쟁 반대”와 “재무장 반대”는 확실히 들었다. 시리아, 레바논, 이란, 팔레스티나 등 나라 이름도 알아들었다. 발언이 잠시 멈출 때마다 누군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Free Palestine) 등 영어 구호를 외쳤다.
그러는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성 하우메 광장을 채웠다. 그리고 방송차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서 현수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쟁 반대’ ‘재무장 반대’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연대한다’ 등이 현수막에 적혀 있었다. 간결하게 ‘민주주의’라고만 적은 작은 깃발이나 팔레스타인 국기나 이란 국기, 레바논 국기를 흔드는 사람도 많았다. 옷에 스페인어로 ‘전쟁 반대’ 스티커를 붙인 여성들이 많았는데 부러워서 나도 얻고 싶었지만 스페인어를 몰라서 실패했다.
이날 집회는 지도자도 참가자도 중노년 여성이 대부분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연금수급자들은 단체로 주황색 조끼를 입고 주황색 현수막을 들고 참가했다. 내가 대충 읽은 바로는, 전쟁할 돈이 있으면 연금부터 제대로 주라는 내용이었다.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스페인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수도 마드리드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다시 열어 국왕이 팔레스타인 대사를 공식적으로 맞이했다. 산체스 총리는 미국의 이란 폭격과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적극 반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이어간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비판했다. 이스라엘 외교부가 이에 반발하자 대통령은 “전세계인들의 지적을 한번쯤 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점잖지만 따끔하게 훈계했다.
이스라엘은 휴전협정을 무시하고 매일같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봉쇄된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의 해초 활동가가 자유선단연합 소속 배를 탔다. 그러자 외교부는 해초 활동가의 여권 효력을 정지시켰다.
여권법 제12조 3항에 따르면 외교부 장관은 제12조 또는 제12조의2에 따라 여권의 발급 또는 재발급이 거부되거나 제한된 사람에 대하여 긴급한 인도적 사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사유에 따른 여행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여권을 발급할 수 있다. 가자지구에서 아이들이 죽는다. 아기들이 굶어 죽고, 어린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들에게 의약품과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긴급한 인도적 사유’가 있는가? 대통령도 이스라엘의 반인권적인 국제법 위반 행위를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다시 열고 미국의 침략적인 미군기지 사용을 불허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려 구호품 좀 전달하겠다고 나선 인권활동가의 여권 효력을 정지시키다니 대한민국 외교부가 부끄럽다. 대한민국 외교부야말로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한국 정부가 이 구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강력히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