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페르디난드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방위산업, 인공지능(AI),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을 국빈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필리핀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마르코스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에서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필리핀의 젊은 군인들이 파병 와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면서 싸웠다”며 “양국은 깊은 역사적 유대감과 단단한 우호관계가 있기 때문에 협력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1949년 3월3일 한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수교한 국가다.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날은 마침 양국이 수교 77돌을 맞은 날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를 부각하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필리핀과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인공지능과 디지털, 친환경 에너지, 조선, 문화산업 등 미래 유망 분야가 활짝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대통령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아래 해양 안보, 국방 협력과 같은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이날 방산과 원전, 케이(K)컬처, 인공지능 분야 등에서 10건의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대통령은 우선 “원전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필리핀 바탄원전 재개 타당성 조사’ 결과 및 ‘신규 원전 사업 도입 협력 양해각서’를 기초로 양국은 최적의 원전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탄원전은 1976년 착공했으나 이후 건설이 중단됐으며, 필리핀 정부는 2022년 고질적 전력난 해결을 위해 바탄원전 건설을 재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금거북선 모형’을 선물하며 조선·방산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이 선박 건조량 기준 세계 2위(한국)와 4위(필리핀)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양국이 힘을 모으면 공동 성장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회담에서는 남중국해와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공동 언론발표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며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수호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해양 분야 원칙을 포함해 국제법을 수호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은 자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서필리핀해에 대한 중국의 잇따른 침범에 대응해 잠수함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화오션 경영진을 직접 만나 잠수함 도입 방안을 논의하는 등 한국과의 전략적 국방 협력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 방문을 마치고 이날 필리핀으로 이동한 이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필리핀 국민 영웅’ 호세 리살 기념비를 찾았다. 리살은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 필리핀의 독립과 개혁을 주장하다 처형된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이자 민족주의 사상가다. 이 대통령은 기념비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필리핀은 이 대통령에게 최고의 환영과 신뢰를 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도시의 열쇠’를 선물했다.
마닐라/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