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5살에 강제결혼 당했다 새출발…"나는 조혼의 생존자"

코이카·유니세프, 카메룬 여성·아동 권리 증진과 자립 지원

"한국은 아이들을 흙바닥에서 책상 앞으로 보내준 나라"

카메룬 초등학교의 아이들
[촬영 김채린]

(야운데·가루아불라이·만주[카메룬]=연합뉴스) 김채린 기자 =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카메룬 동부 가루아불라이 지역의 한 옷 가게.

어두운 가게 안에 들어서자 사디아 할리마두(19) 씨가 재봉틀 앞에 앉아 수줍게 웃으며 반겨줬다.

천을 재단하고 재봉틀을 돌리는 그의 모습은 여느 재봉사와 다르지 않지만, 이곳에 오기까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디아씨는 15살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했고, 16살에 이혼했다.

이혼 당시 임신 중이었던 사디아씨는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만 스스로 돈을 벌 길은 마땅치 않았다.

조혼으로 학업의 기회를 빼앗긴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유니세프였다.

사디아 씨의 재봉틀
[촬영 김채린]

사디아씨는 단체가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약 6개월간 재봉 기술을 배웠다.

이후 재봉틀 등 장비를 지원받아 다른 재봉사와 함께 작은 옷 가게를 열었다.

유니세프는 새 출발하는 사디아씨를 파트너로 계약하고 단체 관계자들이 입는 조끼 제작을 맡기는 등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돕고 있다.

사디아씨는 지원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현재는 자신처럼 조혼의 위험에 놓인 여성들에게 재봉 기술을 가르치며 경제적 자립과 조혼 예방에 힘쓰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가게를 열고 싶다는 사디아씨는 "나는 '조혼의 생존자'다. 나처럼 조혼의 위험에 놓인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나를 지원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나도 다른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미소짓는 사디아 할리마두 씨
[유니세프 카메룬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국경과 인접한 가루아불라이에는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분쟁을 피해 넘어온 난민들이 다수 거주한다.

경제적 빈곤과 아동 보호, 성인지 감수성 부족 등으로 이 지역에는 많은 여성이 조혼과 교육기회 박탈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에 코이카와 유니세프는 취약한 환경에 놓인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자립 역량을 키우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교육, 심리적 지원 등을 통해 아동이 조혼과 폭력의 위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노력은 중앙아프리카 난민들이 모여 생활하는 티호모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걸스 샤인'(Girls Shine) 프로그램에는 10∼17세 소녀들이 참여해 여성의 권리와 자기 보호, 위생 관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운다.

티호모 마을 '걸스 샤인' 프로그램 참가자들
[촬영 김채린]

학교에 다니는 여성과 다녀본 적 없는 여성, 미용·재봉 기술을 가진 여성 등 참가자들의 배경은 다양하다.

정해진 교육 시간 외에도 소녀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 가진 기술을 가르쳐주며 함께 성장한다.

특히 조혼을 겪은 소녀들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아이들과 나누며 또래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아와우 양은 "이곳에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중요성,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며 "나중에는 카메룬에서 가장 큰 학교에서 일하고 싶다. 지역의 젊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여자인 야지도리안 양은 "소녀들에 대한 폭력과 학대를 멈춰야 한다"며 "우리에게는 '싫다'고 말할 권리가 있고, 교육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티호모 마을의 여성들
[촬영 김채린]

변화가 가정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된다.

소녀 개인뿐 아니라 부모와 지역사회까지 함께 변화해야 아동 폭력과 착취, 조혼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긍정적 양육'(Positive Parenting) 교육을 통해 어린 여성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방법을 배운다.

난민 아동을 보호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학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동부 만주 지역의 빈디아 초등학교에는 중앙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 아동 약 1천325명을 포함해 총 1천645명이 재학 중이다.

빈디아 초등학교
[촬영 김채린]

이 학교에서 교사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분쟁을 피해 온 난민 아동들은 각자 다른 트라우마와 정서적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코이카와 유니세프는 교실과 식수 등 지원에 더해 교사들이 아이의 배경을 명확히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교사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이에 세자르 교사는 "트레이닝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이해하고 도울 방법을 알게 됐다"며 "과거 이 지역에는 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코이카와 유니세프의 노력으로 여학생 등록이 늘었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학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수잔낭가 교장은 중앙아프리카에서 부모가 살해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모와 함께 피란 온 한 소녀를 떠올렸다.

학교에 처음 왔을 당시 이 학생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만 했다.

빈디아 초등학교 수잔낭가 교장
[유니세프 카메룬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수잔낭가 교장은 수업을 듣도록 강요하는 대신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런 교장에게 마음을 조금씩 연 학생은 교실이 아닌 교무실에서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수잔낭가 교장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교무실에서 생활하도록 했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는 또래 아이 5명을 교무실로 불러 함께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수업은 교장실에서 자신이 직접 맡았다.

시간이 지나며 이 학생은 다른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나가서 놀 수 있을 정도로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다.

수잔낭가 교장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니세프의 지원을 통해 우리는 그 방법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출생등록이 이뤄지는 가루아불라이 지역 의료 센터 사무실
[촬영 김채린]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정 절차 개선 사업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병원에서 출생 사실을 확인하는 서류를 받은 뒤 3개월 안에 직접 관공서에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거리가 멀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출생등록을 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 탓에 일부 아동은 초등학교 졸업시험 응시나 필요한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교육·보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에 코이카와 유니세프는 병원 출산과 출생 등록을 권장하는 활동과 함께 보건시설 내에 출생등록소를 설치해 등록 접근성을 높였다.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실행한 아동보호 사업 결과 카메룬의 출생등록률은 기존 50.8%에서 55.4%로 증가했다.

가루아불라이 지역의 한 의료센터는 2021년 6월 개소 당시 출생등록을 마친 아동이 58명에 불과했지만, 등록 건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까지 총 4천748건을 기록했다.

출생등록 담당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산모들이 갓난아이를 안고 들어와 등록 절차를 밟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티호모 마을의 아기
[촬영 김채린]

수잔낭가 교장은 "코이카와 유니세프의 프로젝트가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왔고, 학부모들도 변화시켰다"며 "아이들의 권리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주민들은 이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발견하면 직접 데려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아이들을 흙바닥에서 책상 앞으로까지 보내줬다. 한국인들에게 정말 고맙다"며 기자를 꼭 끌어안았다.

lyn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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