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이 관절염 부른다…‘혈압 호르몬’이 연골 파괴 촉진

고혈압이 퇴행성 관절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고혈압이 퇴행성 관절염을 악화시키는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규명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혈압을 높이는 뇌 호르몬이 관절 연골의 파괴를 촉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일 전남대 류제황 교수와 인제대 전장수 교수 공동연구팀은 고혈압이 골관절염(퇴행성 관절염)을 악화시키는 구체적인 분자 원리를 규명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초연구사업’으로 진행됐다.

퇴행성 관절염과 고혈압은 고령층에서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두 질환은 각각 관절과 뼈, 혈관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오래전부터 고혈압 환자에게서는 관절염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관찰됐다. 하지만 두 질환이 함께 악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고혈압과 퇴행성 관절염의 연관을 살폈다. 그 결과 고혈압이 있는 사람일수록 골관절염 유병률이 높고, 관절염이 심할수록 고혈압과의 관련성도 뚜렷한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고혈압이 관절염을 가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혈압이 관절까지 망가뜨리는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과기정통부 제공

연구팀 뇌에서 분비돼 혈압을 높이는 호르몬인 바소프레신(AVP)과 이 호르몬을 받아들이는 바소프레신 수용체(AVPR1A)를 주목했다. 고혈압이 있으면 혈액 속 바소프레신이 늘어난다. 바소프레신 수용체는 건강한 연골에는 거의 없지만, 관절이 다치거나 나이가 들면 크게 늘어난다.

이처럼 혈액속 바소프레신과 수용체가 함께 증가하면 둘의 결합도 활발해진다. 이때 연골을 분해하는 신호가 켜지고, 연골을 보호하는 신호는 꺼져 연골 손상이 빨라진다. 실제로 생쥐에게서 이 수용체를 없애거나 억제하자 고혈압으로 인한 연골 손상이 크게 줄었다.

이번 연구는 ‘관절염은 관절만의 병’이란 오랜 통념을 깨고 뇌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이 관절 건강을 조절한다는 걸 보여준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학술적 의미를 갖는다고 과기정통부는 설명했다. 앞으로 노화성 관절 질환을 전신 건강의 문제로 접근하게 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치료 방향을 열 실마리가 될 수 있단 것이다.

류제황 교수는 “이번 성과는 골관절염 환자를 진료할 때 관절 국소 부위뿐만 아니라 고혈압 같은 전신 건강 상태를 함께 관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며 “앞으로 바소프레신 신호 체계를 표적으로 하는 근본적인 관절염 치료제 개발로 후속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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