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과 월드컵, 그리고 다양성 [양현아 공방]

2024년 12월22일 남태령 시위 현장 모습. 양현아 제공

 


양현아 | 서울대 명예교수(사회이론·젠더법학)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웃을 일이지만 오늘은 월드컵 얘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관전 포인트에는 물론 대한민국 경기가 있었지만, 그 얘기는 일단 제쳐둡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48개국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방영한 덕분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국가들의 경기를 볼 수 있어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이지요. 신선한 파란을 일으킨 지역은 특히 아프리카 나라들인데 그중에서도 뭐니 뭐니 해도 카보베르데가 주목됩니다. 세계 최강 팀인 스페인과 0 대 0 무승부로 이변을 연출하더니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도 2 대 2 무승부로 비기면서 그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카보베르데는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떨어진 1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50여만명의 나라입니다. 한국의 제주도 정도 인구를 가진 조그만 이 나라는 노예무역의 거점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나 1975년에 독립했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좋았어요. 마흔살 노장인 보지냐 골키퍼를 알게 되고, 영적이고 민중적인 세계적인 가수인 세자리아 에보라가 이 나라 출신이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어요.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도 전통적 강호 독일을 맞아 1 대 2로 선전하고, 에콰도르에는 1 대 0으로 이기는 실력을 보여주었지요. 같은 의미라고 할지라도 국명을 ‘아이보리코스트’(상아무역 해안) 같은 자국어로 번역하지 말고 ‘코트디부아르’를 공식 국명으로 쓰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했던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가점은 해설자들에게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국 팀에 대한 응원성 코멘트를 지양하고 전문가다운 경기 분석을 제공하는 한편, 경기 뒤에도 흥미로운 해설과 담론을 펼쳐서 관전의 질을 높여주었지요. 한 국가의 스포츠가 국력을 반영한다는 통설이 있는데, 적어도 이번 월드컵의 예선전까지는 이 통설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잉글랜드 대 가나, 벨기에와 이란이 각각 0 대 0으로 비기는 등 일방적인 경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웠으니까요. 이런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 풍부한 해석들이 나오리라 기대하지만 어쨌든 저와 같은 ‘축알못’이 거실에서 월드컵을 통해 “세계와 세계인들”을 만나는 경험은 흥미진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세계와 세계인이란 평평한 운동장의 멤버들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높낮이가 매우 많은 운동장들이자 거기의 사람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생 출전국들, 특히 약소하고 복잡한 상황의 식민후기(postcolonial) 국가들이 전통적 강호들 앞에서도 기세를 뽐내며 경기하는 모습이 뿌듯한 것은 저 역시 식민후기의 시민이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48개국으로 예선 참가국을 확대한 것이 피파(FIFA·국제축구연맹)의 비즈니스 때문일진 몰라도 그것이 가져온 “다양성의 돌풍”에 갈채를 보냅니다.

6월에는 다큐멘터리 ‘남태령’(2026, 감독 김현지)도 보았습니다. 2024년 12월21일 긴 동짓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까지 남태령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보탠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던 체험이었어요. 농민총연맹(전농) 전봉준 투쟁단은 윤석열 구속과 양곡법 개정을 촉구하는 행진 시위로 트랙터 등을 몰고 서울로 진입하던 중 경찰의 봉쇄를 만났고, 시위 농민에 대한 구타가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이 소셜미디어 엑스(X)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자 주 이용자인 2030 여성들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여들면서 형성된 집회였습니다.

2024년 12월22일 남태령 시위 현장 모습. 양현아 제공

현장에 가 보니 3분짜리 발언을 하려고 30~40m 길게 늘어선 즉석 자유발언대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등 이제까지 보도 듣도 못했던 “가장 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남태령’은 이렇게 찬연하고 신기한 연대와 담론의 공간을 훌륭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농민 아저씨가 “어이, 딸들 수고했어”라고 하자 “우리는 딸들 아니에요”라고 논바이너리들(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정체성)이 대답하고,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이해심을 표합니다. “삼천만 잠 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라는 2030들이 들어본 적 없을 농민가를 현장에서 배우며 같이 불렀던 곳. 후렴마다 “윤석열 탄핵”을 넣어 운을 맞추고 결집시켰던 “케이(K)-문화 시위”에도 밑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다큐의 매력은 그 재현 방식에도 있어서 동시에 전개되었던 소셜미디어의 메시지들을 띄우면서 담론과 지지의 역동성을 실감 나게 보여주었지요. 저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런 정보와 대화의 망 바깥에 있었기에 진정 “있었던가”를 묻게 됩니다. 이 물음은 저의 뒤처짐에 대한 반성이지만 동시에 이런 불꽃 튀는 담론장의 덕택으로 그날의 “대첩 승리”가 있었음에 대한 감사 표시입니다.

남태령 이후 형성된 “말벌동지”들은 이후 동덕여대 시위, 장애인 이동권 시위, 조선업 하청노동자 운동 등에 유기체처럼 결합하고 진화해갔어요. 제 눈길을 더욱 끌었던 것은 대구 지역 성소수자 멤버들의 인터뷰였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늘 변방에 있다”는 김현지 감독의 말처럼 지역, 젠더, 성적 정체성이 교차점에 서 있는 소수자로서 자기들의 터전을 개척하는 실천이야말로 지금 이 나라와 세계에서 너무도 소중하지 않은가요. 이번 6·3 지방선거에 이런 문화와 외침들이 어디에 어떻게 수용되었을까요.

이제 칼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한국의 많은 엘리트가 ‘남태령’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탈위계적이고 활발한 소통을 생명으로 하면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창조하는 “케이-새로운 사회운동”(K-new social movement) 속에서 영감을 받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국회에서도 함께 보시면 좋겠어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당신들이 대표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딸과 조카들, 그 친구들이 거기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새 친구인 농민들과 비정규 노동자들도 나올 겁니다. 너무 한쪽의 목소리가 아니냐고요. 아니요, 이것이 바로 정치에서 실종된 목소리가 아닌가요? 학연·지연 등으로 뚫기 어려운 권력망에서 소외됐지만 다시 창조적으로 살아난 목소리들입니다. 이런 다채로운 연대가 지금의 사회 대개혁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잊지 마세요. 남태령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방법인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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