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과 멕시코가 상호 관세를 낮추는 무역협정 개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 속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공급망 의존도도 줄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22일(현지시각)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제8차 유럽연합-멕시코 정상회의에서 기존 무역협정을 확대·개정한 협정문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개정 협정은 2000년 체결된 기존 협정을 보완한 것이다. 양쪽은 무역과 투자 분야에 남아 있던 장벽 대부분을 없애기로 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타격을 입은 자동차 부품 분야의 교역을 촉진하고, 파스타·초콜릿·감자·통조림 복숭아·달걀·일부 가금류 제품에는 무관세 혜택을 적용하기로 했다.
트럼프 관세 압박 속 ‘다른 지평’ 찾기
멕시코는 유럽연합 특정 지역 특산품 수백 종에 대한 원산지 명칭 보호도 인정하기로 했다. 이는 샴페인, 파르마 햄처럼 특정 지역 이름이 붙은 유럽 농식품의 브랜드 가치를 보호하는 조처다.
양쪽은 공동성명에서 “갈수록 심화하는 불확실성과 중대한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심화·현대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교역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통해 미국 시장과 강하게 연결돼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반복적인 관세 압박을 받아왔다. 유럽연합도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부분의 유럽산 제품에 15% 관세를 적용받기로 하는 등 대미 통상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관세 공세 속에서 “다른 지평을 열어야 한다”며 교역 다변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연합 관계자는 아에프페에 “멕시코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도 줄이려 하고 있다”며 “유럽 역시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피할 수 없는 공급망 재편
이번 협정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2025년 기준 한국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8.4%, 17.3%이고, EU 비중도 9.9%에 이른다. 자동차·배터리·전자 등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이 미국 시장과 중국 공급망, 유럽 수요의 영향권 안에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과 멕시코가 관세 장벽을 낮추면 멕시코를 북미 생산 거점으로 삼는 유럽 기업들의 움직임이 더 커질 수 있다. 멕시코에는 삼성전자·LG전자·기아·포스코 등 한국 기업 약 500곳이 진출해 있어, 북미 시장을 겨냥한 한국 기업들도 경쟁 환경 변화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통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한국에도 교역 다변화와 공급망 재편 압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