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 영도교에서 이포나루까지, 서둘러 떠난 이별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1호선 동묘앞역으로 갔다.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서울부터 영월까지 단종의 이야기를 따라 달릴 참이다.
‘사육신 사건’의 배후로 몰린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난 지 2년여 만인 1457년 7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났다. 단종은 청계천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순왕후와 영원히 헤어졌다. 본래 왕심평대교였던 다리는 ‘영영 건넌 다리’라는 슬픈 뜻의 ‘영도교(永渡橋)’가 되었지만, 동묘시장 지척에 같은 이름으로 세워진 현대식 다리 주변엔 그 시절 이별의 흔적이 없다.
유배 행렬은 왕십리와 살곶이다리를 육로로 지나 양주 화양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주민센터 근처 수령 700년 추정 느티나무가 옛 흔적이다. 세조는 작은 위로 연회를 열었지만 단종은 이를 물리치고 뒤숭숭한 마지막 밤을 보냈다. 해가 긴 7월이었으니 다음날 새벽같이 광나루(현재 워커힐호텔 인근)에서 서풍을 타고 멀리 갔으리라.


광나루에서 물길로 약 20㎞ 떨어진 팔당댐 남단의 하남시 배알미동에는 단종을 태운 배 꼬리를 향해 백성들이 엎드려 절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래 낙향하는 관리들이 한양 방향 마지막 강줄기를 보며 절을 올렸다는 곳이다.

단종의 배가 닿은 여주 이포나루는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포보 남쪽에 있다. 유일한 흔적인 표지석은 건물에 가려졌고, 강변 가는 길은 옹색한 비포장 골목이라 사전 정보 없는 외지인은 모르고 지나칠 곳이다. 옛 나루터마다 안전을 비는 굿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과일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무언가 간절히 비는 이들이 있었다. 그 뒤로 수상스키가 무심하게 강물 위을 달린다. 두서없는 꿈을 담은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청계천 영도교부터 이포보까지는 차도와 분리된 자전거길이 이어지니 초보자도 도전할 만하다. 구리 미음나루고개나 양평 후미개고개 등 한강변의 급경사는 매우 짧으니 천천히 걸어 올라가도 좋다. 옛 화양정 자리인 화양동 느티나무공원은 서울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인근 주택가에 있다. 영월로 향하는 자전거길과 동떨어진 곳이니 따로 시간을 내 대중교통 편으로 찾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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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이포나루에서 단강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왕의 길’
어떤 이는 단종의 영월 유배길이 한 주, 어떤 이는 열흘 걸렸다고 하지만 남은 기록이 거의 없으니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기록 밀도가 낮은 여주와 원주에서의 여정은 설화와 야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포나루에 당도한 유배 행렬은 다음 날 강을 건너 원주 지정면 안창리까지 육로로 이동했다고 전한다. 원주 흥원창까지, 더 멀게는 단강까지 물길이 있는데 험한 산길을 택한 것이다. 남한강 상류로 갈수록 물살이 거셌을 수도 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포나루 바로 아래 큰 도시인 여주를 물길로 관통하는 정치적 모험을 피할 속셈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주시 대신면과 강천면의 산골짜기에는 ‘행치고개’라는 지명이 여럿 확인되는데, ‘임금이 행차한 고개’라는 뜻으로 단종의 유배와 관련이 있다. 이포나루에서 하룻밤을 보낸 유배 행렬은 지척에 여주 시내를 두고 다음 날 아침부터 남한강을 건너 뙤약볕을 맞으며 여러 고개를 넘었다. 지금은 어떤 곳은 고속도로와 골프장에 막혔고, 통행이 줄어 산길이 된 곳도 있어 바퀴 달린 탈 것으로는 주파하기 어렵다. 필자도 안전을 고려해 몇 지점만 지났다. 여러 행치고개 가운데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은 광주원주고속도로 동여주나들목 부근에 있지만 아무 표지 없는 낮은 언덕이라 지나치기 십상이다.

유배 행렬은 안창리에서 섬강을 건넜다. 단종을 태운 배는 강원도에서 손꼽히는 평야 문막,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흥원창, 교통의 요지 부론 중 한 곳에 닿았을 것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고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세조 곁에는 야인으로 팔도를 섭렵한 한명회 같은 이도 있었으니 바람과 상관없이 물살만 타고 갈 수 있는 섬강 하류의 흥원창을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 흥원창은 강원도와 충청도, 멀게는 경상도에서 징수한 세곡을 모아 한양으로 보내던 조창이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국세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주요시설이니 백성의 눈을 피하기도 좋다.


원주 섬강 일대엔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종종 물에 잠기는 저지대를 통과하며, 농로를 겸하는 곳도 있어 노면이 들쭉날쭉하고 풍경 또한 그만큼 변화무쌍하다. 잘 포장된 수도권 자전거길에 익숙한 이들에겐 모험이 될 수 있겠다. 주변에 원주시 트레일 코스와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이 조성되어 걸어서 여행하기도 좋다. 흥원창은 남한강 해넘이 명소로 유명하다.
이후 띄엄띄엄 남은 단종의 흔적은 남한강변 작은 마을 단강에서 다시 선명해진다. 폐허가 된 옛 단강초등학교에는 수령 600년 느티나무가 있다. 한여름 더위와 나졸들의 학대에 지친 단종이 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나졸들은 단종의 고통을 모른체 했으나 임금의 행차라는 걸 안 마을 노인이 물을 떠서 바쳤다고 한다. 단종이 꽂은 지팡이에 싹이 터서 느티나무가 되었다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임금이 위로 잔치를 치러 보낸 인물이 학대당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10대 소년이 지팡이를 짚었을지는 의문이니 신격 인물의 수난기나 ‘삽목 전설’로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귀래부터 신림까지, 고갯길에 숨겨놓은 악의
귀래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여생을 마친 곳이다. 몇백년을 두고 권좌에서 밀려난 왕이 다시 이곳을 다시 찾았으니 ‘귀한 이가 왔다’는 이름에는 운명의 힘이 있었나 보다.
단강에서 귀래로 가는 길은 내내 오르막이라 페달을 힘껏 밟아도 시원하게 달리지 못하니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다. 한강과 멀어지면서 양옆으로 펼쳐지는 산세가 기어코 앞길까지 가로막으면 그곳이 귀래다. 한양에서 왔던 길을 빼면 모든 길이 고개로 막힌 작은 마을 귀래에서 단종은 분명 절망했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들도 긴장해야 한다. 지난 길에 없었던 험한 고개를 몇 번이나 넘어야 영월이다.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와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경계의 배재(또는 뱃재)는 해발 485m의 고개로, 단종의 유배길 가운데 가장 고된 구간이자 원주와 제천의 자전거 동호인들이 손꼽는 난코스다. 고개를 넘는 유배 행렬을 향해 백성들이 절을 했다는 설화에서 비롯한 이름이지만, 근처에서 가장 험한 산골로 밀려난 힘없는 민초 몇몇이 전부였을 터. 처연한 모습만 그려진다.

귀래면 소재지부터 배재 정상까지는 쉼없는 오르막이며, 제천 방향 화당로가 분기하는 삼거리부터는 1.3㎞ 동안 약 180m를 오르는 급경사다. ‘결코 안장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얄팍한 호승심 탓에 분당 170회 가까이 치솟은 심장박동은 정상 도착 뒤에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고통에 여러 얼굴이 밉살스레 떠올랐다. 단종은 이와 견줄 수 없는 원망을 짊어지고 이 고개를 넘었으리라. 배재는 차량 통행이 매우 적고 오르막의 절정은 길지 않으니 힘에 부치면 단종이 지나온 산하를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고개 한두개 더 넘어 끝날 길이 아니다.
단종은 배재, 운학재를 연이어 넘는 강행군 끝에 치악산 자락 신림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림은 문막에서 원주 시내를 지나 치악재만 넘으면 나오는 요지니 애초 험한 고개를 연달아 넘을 이유가 없었다. 멀고 고된 유배길을 고른 이유는 기록으로 남지 않았으니 짐작할 뿐이지만, 이포나루부터 신림까지 여정을 꾸민 이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교활한 인물이었으리라.


신림의 싸리치재는 이 여정의 유일한 비포장 구간이다. 원주와 영월을 잇는 매우 중요한 고개였으나, 그 중요도 때문에 일찌감치 터널이 뚫리면서 포장되는 일 없이 치악산 둘레의 한적한 ‘싸리치옛길’이 됐다. 낭떠러지에 세워진 낡은 콘크리트 가드레일만 오랜 차량 통행의 흔적으로 남았다. 싸리치재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중간쯤 느낌이라 타이어가 얇은 자전거로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다만 영월 방향 내리막은 거친 옛길이 끝나면서 차들이 지나는 신림터널 출구와 만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원주 외곽을 크게 도는 여정은 싸리치재를 내려와 감악산과 찐빵으로 유명한 황둔에서 끝난다. 솔치재 정상부터는 드디어 영월 땅, 주천이다.
■영월 주천부터 청령포까지, 선명하게 새겨진 그리움
주천부터는 단종 이야기가 전해지는 장소를 연달아 지난다. 자전거·도보 여행자가 많아 운전자들도 배려하는 분위기지만, 도로 폭이 좁고 시내로 향하는 차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단종은 주천에서 이름 없는 고개를 넘으며 고난을 털어놨다고 한다. ‘임금이 오른 고개’ 군등치 설화다. 더 높고 험한 고개들에 비슷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고개만큼은 걸어서 오른 것 같다. 오늘날의 군등치는 도로포장을 위해 정상을 깎아 그 시절보다 낮아졌으니 단종의 고통을 짐작하긴 어렵다.

군등치 정상은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감입곡류 하천 서강 유역의 특징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단종유배길 안내판 앞에 서면 주천강에 삼면이 둘러싸인 절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류의 청령포나 영월 한반도 지형과 비슷하다. 사진을 담으려 강변으로 다가서니 절벽 쪽에 바짝 숨겨진 쓰레기가 옥에 티처럼 눈에 들어왔다.

한국사에는 임금이 비상한 이유로 누군가에게 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드물게 전해진다. ‘삼전도의 굴욕’처럼 돌에 새겨진 역사도 있지만, 어느 고갯길 이름으로 전해지는 야사도 있다. 배일치재라는 이름은 영월을 향해 가던 단종이 어느 고개에서 한양 방향으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정순왕후를 떠올리며 통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장을 압도했을 비통함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정상 작은 쉼터 구석에는 이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이 있다.
배일치재는 국도의 일부였으나 배일치재터널이 뚫리면서 한적한 산길이 됐다. 내비를 찍고 영월을 찾는 자동차는 이곳을 지날 일이 없으니 자전거나 도보여행자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해질 무렵 배일치재를 넘은 단종은 다음 마을인 문개실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으리라. 마을 근처에 솟은 작은 바위를 보며 청계천 건너편에 영영 두고 온 정순왕후를 떠올렸다는 옥녀봉 설화는 꽤 설득력이 있다. 내리막을 빠르게 달리며 지나가도 눈에 띄는 절경이다.
단종은 다음 날 소나기를 맞으며 마지막 고개를 넘고 훗날 자신의 무덤이 되는 명당을 지나 청령포에 도착했을 것이다. 소나기재 정상은 대절 버스가 수시로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 선돌 입구를 겸하며, 장릉 역시 방문객이 급격히 늘어나 평일에도 차량이 많은 편이다. 청령포는 영월 시내와 매우 가까운 곳이며, ‘왕사남’ 열풍 뒤 전국민적 관광지가 됐으니 처연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힘 없는 이들의 연민이 서린 단강과 배재, 무거운 고독이 지난 싸리치옛길, 고난의 군등치와 그리움의 배일치재까지. 단명했지만 이 땅에 누구보다 많은 흔적을 남겼고, 죽어서는 신이 된 그가 길에 새겨놓은 오래된 고독과 탄식만은 지금까지 선명하다. 두 바퀴와 두 다리로 그 오래된 마음을 천천히 되새기며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
편집자주: 자전거를 타면 오르막의 저항과 내리막의 해방감, 순풍과 역풍의 질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도는 화면 속 평면이 아닌 입체로 살아 다가오고, 여행자의 요동치는 심장은 매 순간마다 목적지가 아닌 길에 몰입하게 됩니다. 철판과 유리로 막힌 공간 안에서 느끼기 어려운 느린 여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비정기 연재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