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변주곡’의 명장 파가니니
주제 포착해 악마적 테크닉 보태
‘삶은 달걀’처럼 다채롭게 ‘요리’

같이 들을 클래식
니콜로 파가니니, 베니스 카니발
안인모의 미락(美樂)클
온 식구가 다 즐기는 매운 음식을 나만 혼자 못 먹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고추장과 관련된 모든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토록 못 먹는 음식이 많았는데도, 키는 잘만 자랐다. 대신 즐겨 먹은 건 달걀이었다.
달걀간장밥에 백김치와 하얀 동치미…. 엄마의 도시락에는 식빵에 달걀샐러드를 넣은 샌드위치가 꼭 있었다. 만약 내가 매운 음식을 즐겼다면 키가 더 컸을 거라는 농담을 듣곤 한다. 성인이 돼서야 매운 김치를 조금씩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매운맛을 즐긴 건 짬뽕에 맛을 들이면서다. 그전까진 짜장과 짬뽕 중 한치의 고민 없이 짜장면을 선택했다. 이제 즐거운 고민이 추가된 셈.
삶은 달걀이 유행이다. 삶은 달걀에 그릭요거트, 아보카도와 올리브유 등으로 간단한 아침 만들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걀이 들어가면 어떤 음식이든 다 맛있어진다. 김밥에 달걀이 없다면 무슨 맛일까? 달걀찜(전자레인지가 쪄요), 달걀밥(버터도 넣어주세요), 달걀말이(안 말아져도 괜찮아요), 달걀탕(중국에서 온 음식인가요?), 달걀김밥(노란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등…. 라면에 달걀이 빠지면 서운하기까지 하다.
유럽인들이 삶은 달걀을 컵에 올려 먹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스푼으로 반숙란을 잘 떠먹기 위해선데, 마치 달걀을 추앙하는 듯 보였다. 달걀은 그럴 자격이 있다.
음악에서도 주제만 “잘” 있으면 무한 변주가 가능하다. 네마디의 단순한 선율이 10분간 연주곡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경이롭다. 감상자에게도 황홀경이지만, 연주자를 짜릿하게 하는 곡이 바로 변주곡이다. 변주곡은 주제를 떠받드는 동시에 악마적 테크닉의 연주자를 극상의 경지로 추대한다.
리스트와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 후세 음악가들은 선배 작곡가의 작품 속 주제를 피아노 변주곡으로 남기곤 했다. 여기서 공통으로 나오는 이름이 바로 파가니니다.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이탈리아)는 바이올린 기술을 악마의, 아니 천상의 그곳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즉, 달걀 하나로 다양한 요리를 해 드셨다. 변주곡은 다양한 기교를 전시하는 전시장이며 파가니니와 같은 비르투오소에겐 필수였다. 비르투오소는 ‘테크닉 장인’을 뜻한다. 19세기 초, 대중 콘서트가 유행하면서 청중은 연주자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기교를 원했다. 바로 그 ‘니즈’와 파가니니의 창의적인 기교가 잘 맞은 것. 파가니니는 콘서트 중 무대 위에서 주제를 ‘즉흥’으로 이리저리 변주하고, 이후 악보로 남겼다. 즉, 그에게 변주곡은, 즉흥으로 연주한 것을 기록해둔 기록장인 셈이다.
꽤 괜찮은 주제는 무한 확장된다. 파가니니의 변주곡 중, 우리 귀에 무척 익숙한 주제가 있다, “내 모자 세모났네, 세모난 내 모자~”라는 가사가 바로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 선율은 파가니니 작품이 아니라, 나폴리의 민요다. 가사는 “오 맘마, 맘마 카라”(O mamma, mamma cara~: 오 사랑하는 엄마)로 시작한다. 이 민요를 주제로 파가니니가 만든 바이올린 변주곡이 ‘베니스 카니발’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파가니니 덕분에, 나폴리 민요가 전 세계에서 연주되는 것이다. 마치 비티에스(BTS)가 부르는 아리랑이 전 세계 콘서트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과 같달까?
변주곡의 달인인 파가니니는, 6/8박자, 단 네마디의 이 단순한 선율로 12분짜리 변주곡을 만들었다. 짧은 선율에 20개의 변주가 붙었다. 20개의 변주곡은 각각의 “기술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제3변주는 트릴을 강조하고, 4변주는 짧고 강한 악센트, 7변주는 고음역의 재빠른 3연음부, 10변주는 32분음표들로 가득하고 13변주는 하모닉스(Harmonics), 15변주는 피치카토(Pizzicato), 11변주부터는 왼손 테크닉이 주목적으로, 왼손 피치카토와 글리산도가 등장한다. 마지막 4분, 15변주부터 극악의 고난도를 선보인다. 18, 19, 20변주는 그야말로 악마적이다. 또한 감상하다 보면, 9변주에서 암소, 12변주는 새, 14변주는 돼지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마지막 20변주는 바이올린 한대로 메아리 효과를 낸다.
파가니니 이후, 트럼펫, 더블베이스 등 각종 악기를 위한 ‘베니스 카니발’이 탄생했다. 모두 변주곡 형식이다. 파가니니는 1829년 ‘베니스 카니발’을 작곡하고 콘서트 투어에서 연주했는데, 마침 그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쇼팽도 관람한다. 쇼팽은 곧바로 이 주제로 피아노곡 ‘파가니니의 추억’을 작곡한다. 파가니니만큼이나 대단한 피아노 테크닉을 곁들이진 않았지만, 쇼팽만의 유려한 피아니즘이 한몫한다. 쇼팽이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지도 가늠하게 된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20개보다 많은 변주를 연주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연주자들은 콘서트에서 약 4분가량의 짧은 버전만 연주한다. 전곡 연주는 너무나 어려워서다. 지금 전곡을 다 들어보면 어떨까? 달걀 한판을 다 먹은 기분이 들지도.
나의 ‘오 사랑하는 엄마’는 나를 위해 ‘(안 매운) 하얀’ 도시락을 따로 싸주셔야 했지만 매운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지 않으셨다. 어른이 되면 결국 먹게 될 거라고 믿어주셨고, 지금은 매운 거 잘 먹으며 백김치보다 매서운 삶을 살고 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이라도, 기정사실이 되면 별로 설레지 않는다. 기다렸던 봄이 막상 오고 나면, 금세 봄에 안주하듯. 여름의 문턱에 있는 요즘은 여름에 설렌다. 냉면의 계절이니까. 나는 냉면도 비빔냉면이 아닌 맵지 않은 물냉면을 좋아한다. 물냉면에는 마치 밤하늘의 달처럼, 냉면 그릇을 환하게 비추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감이 너무나 커서 마지막까지 아끼다가 가장 마지막 순간에 운명이 결정되는, 삶은 달걀이다. 물냉면에서 삶은 달걀은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냉면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냉면을 빛내준다.
삶은 달걀은 멋진 주제다. 우리의 삶도, 삶은 달걀처럼 다양하게 변주되기에, 하나의 변주에 울고 웃을 필요가 없다. 삶은 끝까지 가보는 게 중요하다.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