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 l 정이현 소설가 ‘낭만적 사랑과 사회’
23년 전 출간됐지만, 여전히 읽히는 소설집
소논문 과제로 당대 여성들 심층 인터뷰
중립적 연구 넘어 “문학이 허락한 영토”로

첫 책의 표제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사회인류학자인 재클린 살스비의 저서 ‘Romantic love and society’(‘낭만적 사랑과 사회’, 민음사, 1985)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대학원 수업에서 그 책을 처음 접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믿어온 낭만적 사랑이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이데올로기임을 분석한 작업이었다.
같은 주제로 소논문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다. 나는 당시 주목받던 심층 면접(In-depth Interview) 연구법을 사용하고자 했다. 연구자가 사회 현상 이면에 흐르는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피연구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다. 20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연구자라는 본분을 잊을 만큼 대화 자체의 생동감에 매료되었다. 번번이 나의 속내를 털어놓았고, 나중에 녹음을 풀며 참여자보다 내 음성이 더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 대화들 속에는 깔깔거리는 웃음과 어디까지 말할지 가늠하는 망설임, 짧고 어색한 침묵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사연을 채록하는 일보다, 그 너머에 반복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회적 압력과 그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마음에 더 관심이 갔다. 그건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중립적인 연구자가 아니라 한명의 주관적인 당사자가 되어 감탄사와 느낌표, 말줄임표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허구의 문장들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객관적인 언어와 주관적인 언어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언어가 정리의 언어라면 주관적인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담화의 언어에 가까운 게 아닐까. 사회과학과 문학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고, 나는 진심의 소리에 천천히 귀 기울였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 어떤 싹이 움텄던 것도 같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외형은 가장 뻔하고 상투적인 구조를 따르도록 구성했다. 상투적인 각본은 존재해도 상투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정해놓은 형식에 맞춰 전형적으로 살아가는 듯 보이는 인물이, 사실은 그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고 충실히 ‘연기’하는 중이라면 어떨지 궁금했다. 나 자신을 포함한 ‘그녀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강박,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틀과 개별적 단독자인 ‘그녀’ 사이의 갈등,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순응과 은밀한 저항에 집중했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실제 사례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과 재해석을 거쳐 창조된 독립적 존재들이다. 단정하게 마감된 옷감 뒷면의 거친 바느질 자국처럼, 매끄러운 겉면 아래 숨겨진 불균질한 심층을 화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다. 그 끝은 필연적으로 사회구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내심 소설 쓰기를 사회과학의 또 다른 방법론으로 빌려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문학이 허락한, 고통스럽고 자유로운 영토로 건너가고 있었는지도.
첫 책을 세상에 내놓은 지 23년이 흘렀다. 이 책을 최근에 접했다는 젊은 독자들을 아직도 종종 만난다. 출간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게까지 가닿게 될 줄 전혀 몰랐기에 얼떨떨하다. 언젠가부터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대해 말을 건네오는 이들 대다수가 소설에 대한 감상보다는, 그 책을 읽었던 한 시절의 자신을 추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다시 펼치자 과거가 아니라 일찍 당도한 오늘이 느껴졌다”는 한 독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책의 운명이란 결국 작가의 손을 떠나 저마다의 현재 속에서 매번 새롭게 존재하는 것임을 되새긴다.
정이현 소설가
■ 그리고 다음 책들

달콤한 나의 도시
첫 장편소설. 내 책들 가운데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책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소설의 운명에는 작가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때는 그 사실에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따금 일인칭 화자인 오은수를 떠올릴 때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옛친구 같다. 나와 세살 터울인 그녀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한다.
문학과지성사(2006)

너는 모른다
두번째 장편소설. 일년여 동안, 일일 연재를 했다. 매일 밤 쪽잠을 자고 새벽녘에 깨어나 그날 분량의 원고를 송고했다. 인물들은 계속 이야기를 쏟아냈고, 서사는 종횡으로 뻗어 나갔다. 소설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비로소 몸으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 생명체에 압도당하면서, 소설이라는 형식에 대해 비로소 큰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학동네(2009)

상냥한 폭력의 시대
세번째 소설집. 2007년 두번째 소설집을 출간한 뒤 꽤 오랫동안 단편을 쓰지 못했다. 단편을 쓰기 위해 필요한 혼자만의 예민한 시간과 집중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다. 쓰지 못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시 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작은 감각들을 하나씩 붙들어 모았다. 그렇게 발표한 단편들을 모아 다시 소설집을 묶게 되었을 때의 먹먹함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 책의 출간을 기점으로 창작자로서의 태도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문학과지성사(2016)

노 피플 존
가장 최근에 출간된 네번째 소설집. 역시 9년 만의 단편집이지만 그 시간을 지난 방식은 달랐다. 9년 동안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썼다. 조바심과 과욕 없이, 나의 속도로 쓰는 감각을 체화했다고 생각한다. 출간 이후 새삼 실감한 것은, 이십여년 전의 젊은 독자들이 어느덧 중년이 되어 새 책을 읽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소설과 삶 사이에서 흔들리던 긴 시간 동안, 독자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를 이어오고 있었다. 함께 지나고 있음에 감사한다.
문학동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