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가 무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관심이 중동에 쏠리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도 멈췄다. 우크라이나군은 지상 전투로봇 등 무인 무기를 대거 투입해, 병력과 화력 열세를 메우고 있다.
중동발 무기 품귀, 우크라에 ‘유탄’
르몽드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중동 전쟁이 시작된 바로 그때부터 우리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패트리엇(PAC)-2와 PAC-3 등이 “느리게 공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패트리엇-2, 3는 각각 고도 25㎞, 25∼30㎞에서 적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미국제 방공 무기다. 러시아군이 밤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쏘는 수십발의 킨잘·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떨구는 데 쓰인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우크라이나 우선 지원 목록’(PURL·펄) 프로그램을 통해 패트리엇을 구매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자금을 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미국산 장비를 사는 방식이다.
그러나 2월28일 발발한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미군이 패트리엇 등을 빠르게 소모하면서 세계적으로 품귀가 빚어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이런 (무기 소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패트리엇-2, 3 확보를 위해 다양한 경로와 대안을 찾고 있다”며 중동과 유럽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이날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와의 인터뷰에서도 “전쟁이 더 오래 지속되면 우크라이나는 무기를 덜 갖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엄청난 (패트리엇) 부족 상태에 있으며,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 역시 미·이스라엘-이란 전쟁 이후 진전이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대표단은 지난 2월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중재로 회담한 뒤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국 협상 대표인 스티브 윗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끊임없이 이란과 협상하느라 우크라이나에 쓸 시간이 없다”며 “미국이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전쟁 지속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난전 유도, 우크라는 ‘로봇’ 방어
한편 우크라이나에서는 동부 도네츠크와 수미주 등을 중심으로 격전이 이어지고 있다. 르몽드는 이 전쟁의 전황을 분석하는 우크라이나 기관 ‘딥스테이트’를 인용해 수미주에서 러시아군이 침투했거나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 150㎢에 이른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우회해 소규모 부대를 잠입시키는 전술을 펴면서, 넓은 지역에서 ‘난전’이 이어지는 것이다.
딥스테이트는 텔레그램 채널에서 “러시아군은 우리 국경을 탐색해 이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지, 약점이 어디인지 확인한 뒤 (국경 완충지대 조성) 작업에 착수했다”며 “러시아군이 (수미주) 흐라보우스케 마을을 통해 일정 부분 진격을 시작했으며, 이날은 미로필 지역에서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무인항공기(UAV)와 지상 전투로봇(UGV) 투입을 늘려 맞서고 있다. 러시아의 난전으로 방어해야 할 접촉선이 넓어지자, 무인장비를 배치해 병력 부족을 메우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방위산업 종사자의 날 연설에서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적의 진지 하나가 오직 무인 플랫폼(전투체계)인 지상 로봇과 공중 드론만으로 점령됐다”며 “점령군이 항복했고, 보병의 참여는 없었다. 아군 희생도 전혀 없이 수행됐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지상 로봇 시스템은 3개월 만에 이미 전선에서 2만2000건 넘는 임무를 수행했다. 2만2000명의 생명이 보존된 것”이라며 “가장 위험한 구역에서 로봇이 병사를 대신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한달 동안 지상 로봇을 통해 9000건 넘는 전투·보급 임무를 수행했다고 7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2900건, 올 1월 7500건 등에 견줘 갈수록 로봇 비중이 늘고 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