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뇌’보다는 ‘혀’ 느낌? AI와 인간의 공개 글 첨삭 대결

3일 저녁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청년문화공간제이유(JU) 5층 니콜라오홀에서 열린 ‘김영민 vs 에이아이(AI) 에세이 첨삭 공개토크’에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청중들의 질문을 화면에 띄운 뒤 답하고 있다. 어크로스 출판사 제공

“이 글의 심장입니다. 마침표 뒤에 대시, 그리고 구두점의 배치가 글쓴이가 뉴스를 발견하는 순간의 정지감을 재현합니다.”(클로드 오퍼스:미국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의 대형언어모델)

“한국무단승차협회, 휴지통 옆에 쓰레기쌓기협회…개드립을 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요.”(김영민 교수)

인간과 에이아이가 원고 첨삭 대결을 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바둑 대결을 한 지 10년 만이다. 이번에는 바둑처럼 승패가 달린 게임은 아니었다. 글 한 편을 놓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떤 시각과 의견을 드러내는지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청년문화공간제이유(JU) 5층 니콜라오홀에는 200여명의 청중이 모였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어크로스 출판사가 공동주최한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 ‘김영민 vs 에이아이(AI) 에세이 첨삭 공개토크’를 보러 온 이들이었다. 에이아이(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우리는 왜 여전히 생각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느냐는 문제의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어크로스 출판사 관계자는 “처음에 100명을 모집했는데 한 시간 만에 매진돼, 넓은 강연장을 급하게 구하고 90명을 더 모았다”고 했다.

3일 저녁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청년문화공간제이유(JU) 5층 니콜라오홀에서 열린 ‘김영민 vs 에이아이(AI) 에세이 첨삭 공개토크’에서 첨삭 대상으로 오른 독자 글을 청중들이 보고 있다. 어크로스 출판사 제공

‘공부란 무엇인가’, ‘논어란 무엇인가’, ‘한국이란 무엇인가’ 등 ‘무엇인가’ 시리즈 책의 저자로 유명한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날 클로드 오퍼스와 함께 독자들이 보내온 3편의 에세이와 논술문을 공개 첨삭했다. 처음에는 제미나이나 쳇지피티와 대결할 계획이었다. 행사 공지가 나가자 “클로드 오퍼스와 해야 한다”는 댓글이 연쇄적으로 붙었다고 한다. 클로드 오퍼스는 창작이나 문맥 처리에 강점을 가진 에이아이다. 이날 행사는 1부 에이아이와 김 교수의 공개첨삭, 2부 김 교수 강연, 3부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첫 첨삭 대상은 200자 원고지 기준 6매 분량의 ‘아주 사적인 애도’라는 독자의 글이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본 ‘(사)떫은감협회 총회’ 현수막을 통해 무난하고 달콤한 것들이 만연한 세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에이아이는 “앞부분 두 단락이 공간 낭비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너무 늦다”며 예리한 첫 코멘트를 날렸다. 이어 ‘감계(?)’라는 괄호 속 물음표를 “이 세계의 아웃사이더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표시”라고 칭찬하더니, 각 문장과 표현을 놓고 7~8개의 지적을 했다. “글쓴이가 뉴스를 발견하는 순간의 정지감을 재현한다”, “글쓴이의 서운함이 드러난다”는 코멘트도 있었다. “애상에 잠긴다”는 마지막 문장에 대해선 “마지막에 갑자기 차려입는다”고 평했다. 에이아이의 코멘트는 날카로움이 있었지만, 현학적이고 난해했다.

이에 비해 김 교수의 코멘트는 간결했고 요지가 분명했다. 그는 글의 제목과 구성, 표현, 리듬 등의 문제점을 짚은 뒤 제목을 좀 더 도발적으로 “왜, 떫냐?”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떫은 감’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대목이 너무 전면에 드러나 독자가 직접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맛을 약화했다고 했다. 맨 앞의 두 단락을 소거한 뒤 사회비평에 해당하는 내용을 넣어 보완하면 더 ‘임팩트’가 컸을 것이라는 총평을 했다.

김 교수는 에이아이가 한 코멘트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에세이를 논술문처럼 여겼다”고 했다. 이어 “에이아이는 결과물로서 좋은 글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저는 이 사람이 나중에라도 더 좋은 글을 사람이 쓰는 되게끔 자극을 주려고 한다. 방향이 다르다”고 했다. 다른 독자 글에 대한 에이아이와 김 교수의 코멘트를 블라인드 처리해놓고 누가 했는지를 맞히는 청중들의 즉석 투표는 싱겁게 끝났다. 85%가 각각 누가 코멘트했는지 알아차렸다.

3일 저녁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청년문화공간제이유(JU) 5층 니콜라오홀에서 열린 ‘김영민 vs 에이아이(AI) 에세이 첨삭 공개토크’에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말하고 있다. 어크로스 출판사 제공

김 교수는 강연에서 “현재 인공지능에 관한 압도적 담론은 경제적 효과와 과연 에이아이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느냐 같이 너무 큰 것”이라며 “어떤 인간이 되는지를 논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글쓰기 방식은 그 사람의 내면을 조형한다. 관용구를 피하고 자기만의 독창적 표현을 최고의 글쓰기라 믿는 사람의 내면은 훨씬 다를 것이다. 글쓰기가 특정한 인간상을 만든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첨삭 과정에서 에이아이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 대목이 있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선 “낫고 안 낫고의 기준보다는 의외로 (에이아이가) 내가 한 코멘트와 많이 안 겹친다. 보완적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나의 기존 글로 에이아이를 학습시켜 문체를 모두 따라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 뒤 글쓰기 협업을 하는 게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냐? 그게 정말 살고 싶은 인생인지 묻고 싶다”며 “초고는 무조건 혼자 쓴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다. 그게 나의 원칙”이라고 답했다. 한 청중은 질의·응답 사이트 댓글로 “교수님 첨삭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에이아이는 여전히 ‘뇌’이기보다는 ‘혀’라는 느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김영민 교수는 행사 전 한겨레와 통화에서 “본래 출판사에서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으로 북토크를 하자고 했으나, 기왕이면 시의성과 의미가 있는 행사를 하고 싶어 에이아이와의 공개 첨삭 행사를 제안했다”며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와 직결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윤서(43, 미술관 학예사)씨는 "도전적 북토크 방식이 너무 신선해 바로 참가신청을 했다”며 "평소 단단한 글을 쓰고 싶었다. 단어 하나 기호 하나를 붙잡고 집단적으로 함께 고민하며 결국 나는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닿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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