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옆에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 집 옆에 있어도 안 되는 시설입니다.”
3일 오전 11시 서울 금천구 독산동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앞, 공사 반대 집회를 위해 모인 90여명의 주민들은 데이터센터가 ‘유해시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 손에는 ‘학교, 주거지에 데이터센터가 웬 말이냐’ ‘동의 없이 공사 강행하는 금천구청장 사퇴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주민 최영진(55)씨는 “그런 시설을 주거지에 지으라고 허가를 내주고도 안전성을 걱정하는 주민들 얘기에 구청이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공지능(AI) 시대 인프라로 꼽히는 데이터센터가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건립 부지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데이터센터가 전자파와 소음,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피 시설’이 된 탓이다. 인공지능 물결에 올라타기 위해 의견수렴 절차 없이 데이터센터 건립에 뛰어든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모양새다.
독산동에 데이터센터 건립 공사가 시작된 건 지난해 10월이다. 금천구청은 2024년 10월 지하1층, 지상8층 규모 데이터센터 건축을 허가했다. 부지가 준공업지역인 데다, 건물 연면적이 환경영향평가 대상도 아니어서 허가 사실이 주민들에게 고지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주민 고지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게 구청 관계자 설명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주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공사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 됐다. 최씨는 “공사가 시끄럽다 보니까 일부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으면서 구청이 지난해 8월쯤 주민 간담회를 열었는데 그제야 데이터센터를 짓는 공사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데이터센터를 반기지 않는 데는 여러 우려가 깔려있다. 데이터센터 건립 부지와 직선 거리로 100미터 떨어진 한 아파트 주민 김아무개(29)씨는 “데이터센터가 이미 많이 지어진 외국에선 열돔 현상(인근 지역의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이랑 전자파, 소음이 엄청 심하다고 하더라”며 “어머니가 이미 지하철 소음으로 스트레스가 큰 상황이라 또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의 특성상 고압의 전기가 이동하는 전선이 지하에 매설되는 것이나, 리튬이온배터리 등이 주거지 인근에 다량 들어서는 것을 두고도 주민들은 화재 발생 위험을 걱정한다. 독산동 데이터센터의 계약 전력은 5메가와트 수준이다.
전문가들도 데이터센터 인근에서 열돔 현상이나 소음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주택가 인근에 지어지는 시설인 점을 감안하면 5메가와트는 적지 않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라며 “정확한 주민 피해 수준은 믿을 수 있는 기관을 통해 측정해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 데이터센터 인근에서 열돔 현상이 발생하고, 낮은 저소음이 24시간 지속되는 문제 등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금천구청은 뒤늦게 시행사를 통해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환경 영향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주민들은 객관적인 기관의 검사가 아니라며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천구청은 내달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해 건축 허가 과정에서의 위법 여부 등을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데이터센터 건립’ 갈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금천구의원 후보·예비후보들은 최근 연일 열리는 주민 반대 집회 현장을 찾아 유세를 펼쳤다. 공사 현장 인근에는 국민의힘 금천구 당원협의회가 내건 ‘구청장과 지역구의원이 나서서 당장 해결하라’는 내용의 현수막 위에, 더불어민주당 금천구 지역위원회가 ‘데이터센터, 금천주민 편에서 해결하겠다’란 내용의 현수막이 반쯤 가리듯 내걸리기도 했다.
데이터센터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독산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과 문래동에 건립 예정인 데이터센터도 주민 반대에 부딪혔고, 경기 고양시와 김포시에는 주민 반대로 공사가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주거지 인근 데이터센터 건립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권 소장은 “데이터센터 건립을 두고 여러 지자체에서 주민 반대가 반복되는 상황인데도 국회에서 논의 중인 데이터센터특별법은 건립 절차를 쉽게 해주는 촉진법에 그치고 있다”며 “주거지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할 때는 절차적으로 환경 영향을 평가하도록 하는 등의 절차적 규제가 입법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