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철강·알루미늄·구리 등 완제품에 25%의 관세를 일괄 부과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산업통상부가 긴급 민관 합동 회의에 나서 업계 영향을 점검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세 부담이 50%에서 25%로 낮아지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수출하는 개별 제품의 철강 중량이 전체 무게의 15%를 넘는지 안 넘는지에 따라 기업이 짊어지게 되는 관세 부담이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은 “변압기나 기계류, 화장품 등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한시적으로 경감돼 관세부담이 줄 것”이라면서도 “가전, 전선·케이블, 일부 자동차 부품은 함량 기준이 아닌 전체 가치 기준으로 전환되면서 관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관세 체계 개편의 핵심은 철강·알루미늄·구리 ‘함량가치’ 기준을 폐지하고 제품 ‘전체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간 미국은 제품 가격 가운데 철강 등 함량가치(가격)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에는 일반 관세 10%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금속 무게가 제품 무게의 15% 이상이면 제품의 전체 가격에 대해 25% 관세를 일괄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오는 6일 오전 0시 1분(미 동부시간)부터 시행된다.
세탁기·냉장고·건조기·식기세척기 등 일부 가전 품목은 이번 조치로 인해 관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가격이 100만원인 세탁기에서 알루미늄, 철강 등 함량 가치가 2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기존에는 20만원의 50%인 10만원에다 나머지 80만원의 10%인 8만원을 더한 18만원을 관세로 냈다. 이번 개편으로 제품 전체 가격에 25%가 적용되면 25만원을 내야 해 부담이 7만원 늘 수 있다.
관세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변압기 등을 생산하는 한 중공업체 관계자는 “대형 변압기의 경우, 기존에도 미국 시장의 수요가 커 판매가격에 이미 관세 부담을 상당 부분 반영해 왔다”며 “이번 개편으로 완제품에 대한 관세 부담이 일부 완화되면서, 미국산 조달 부품이 들어간 제품의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도 있다”고 했다. 미 정부는 미국 제조 공급망과 인공지능(AI) 전력망 확충에 필수적인 대형 변압기와 산업기계류에는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25% 대신 15%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화장품, 화학제품, 식료품, 가구, 조명 등 제품 내 철강과 알루미늄 등의 비중이 15% 미만인 제품은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철강·알루미늄·구리로만 구성된 품목의 관세는 50%로 기존 수준이 유지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철강의 함량 비중이 아예 15%보다 낮거나 매우 높은 파생제품 기업의 관세 부담은 덜해질 수 있지만, 가전·기계와 같이 금속 이외 가공비, 디자인 비용 등 부가가치가 큰 완제품은 제품 전체 가격이 과세 대상이 되면서 실질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손익 영향을 점검 중이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따라서 (이번 개편이)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제품별 실제 관세 비용을 따져보고 있다”면서도 “가전 제품 중 철강 무게가 가장 무거운 세탁기와 건조기는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휠이나 차체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사용하는 철강·알루미늄·구리의 종류와 제품별 중량 비중이 제각각이어서 업계 영향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날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해 업계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미국의 파생품 목록에 포함된 품목 중 철강·알루미늄·구리 중량이 제품 전체 무게의 15% 이상인 가전, 모터, 자동차 부품, 전선·케이블 등이 정부의 ‘우선 점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개편으로 업계 전반의 관세 산정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금속 중량이 15%를 넘어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들의 경우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긴급 화상회의에는 철강·기계·전기·전자, 자동차·부품, 화장품, 식품 등 주요 업종별 협회와 대한상의, 코트라, 무역협회 등 유관기관이 참석해 제도 변화에 따른 영향과 애로 사항을 공유했다. 산업부는 오는 8일 통상교섭본부장 주최로 업계 간담회를 열어 제도 변경사항을 안내하고 업계 어려움을 파악할 예정이다.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