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울주·경북 영덕·경주, 부산 기장군이 신규 핵발전(원전) 부지 신청에 나선 가운데, 이 지방자치단체들이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원전 유치를 추진했다며 시민단체들이 철회를 촉구했다.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은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 안전을 팔아치운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부지 공모에는 울산 울주군과 경북 영덕군(대형 원전), 부산 기장군과 경북 경주시(소형모듈원전)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비상행동은 이번 유치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영덕군의 경우, 유치 동의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에야 주민 찬반을 묻는 설명회를 진행했고, 유치 신청 직전에 군의회에서 동의안을 재가결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주는 소형모듈원전 부지 위치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은 채 추진하다가, 최종 신청서에서 기존 월성 원전 부지 내 산을 깎아 만든 산지를 포함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울주와 기장 역시 주민 참여보다는 공무원 중심의 형식적 설명회로 진행됐고, 높은 찬성률을 확보하기 위해 사후 여론 수렴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비상행동은 “유치 경쟁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찾아볼 수 없었고, 주민 의사를 왜곡하거나 배제하는 절차가 반복됐다”고 강조했다.
비상행동은 특히 원전이 동남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문제를 우려했다. 현재 국내 가동 원전 26기 가운데 20기가 부산·울산·경주 등 일대에 밀집해 있는데, 여기에 신규 원전까지 추가될 경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초밀집 지역’이 된다는 것이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지역에 원전을 추가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정면으로 외면하는 일”이이라며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 없이 부지 안에 쌓아두는 상황에서 원전을 더 짓겠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원전을 유치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양기석 종교환경회의 공동대표는 “원전이 들어선 지역은 오히려 산업 다변화가 어려워지고 청년층 유출이 심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역시 제한적이고 단기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원전 지역 일자리의 상당수가 외부 인력 중심이며, 지역에 남는 경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현재 전력 설비가 이미 충분한 상황에서 원전을 추가로 짓는 것은 전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산업 구조 유지를 위한 이해관계 때문”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가 오히려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4곳의 지자체도 유치 신청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한편, 국가데이터처 산하 국가데이터연구원의 ‘한국의 지속가능발전(SDG) 이행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최종 에너지 소비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4.1%로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