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의 제도와 한반도의 ‘검은 연기’ [아침햇발]

지난 1일 이란의 보복 공격을 당한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중 하나인 샤르자의 한 공업지대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방부는 이란에서 탄도미사일 165기, 무인기(드론) 541대가 날아왔으며 이 가운데 드론 35대가 영토 내로 떨어져 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길윤형

논설위원

‘패전국’ 일본이 연합국과 2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인 ‘샌프란스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한 것은 1951년 9월8일(발효는 이듬해 4월28일)이었다. 일본에서 이 두 조약의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이는 니시무라 구마오 외무성 조약국장이었다. 그는 1971년 펴낸 저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의 교섭이 부족했었다’는 점을 선선히 인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승전국’ 미국의 요청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극동 조항’이었다. 이 조항은 “극동의 국제 평화 및 안전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 미군은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을 사용할 수 있다”(옛 조약 1조 중간 부분, 개정 조약 6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극동’이란 필리핀~대만~대한민국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미국은 이 조항에 따라 일본 내 기지를 사용해 극동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하지만 이는 공격당하는 국가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적대행위’가 된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른바 ‘장엄한 분노’ 작전 이후, 걸프 국가들의 주요 도시들이 이란의 보복 공격을 당한 이유다. 구마오 국장은 말했다.

“극동 조항과 관련한 문제―예를 들어 극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주일미군이 일본이 제공하는 시설·구역을 극동의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 일본 정부는 어느 정도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충분한 고려 없이 ‘동의하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을 총리에게 보고했다. 지금까지도 정말로 부끄럽기 한이 없다(汗顔の至りである,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땀범벅이 된다는 의미). 이 모든 것이 1960년 1월19일 조약 개정으로 시정됐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많은 이가 오해하지만 미-일 안보조약은 상호방위조약이 아니다. 조약의 적용 범위는 “일본의 시정 아래(행정권 아래) 있는 영역”에 한정되며, 이곳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일은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5조)하게 된다. 일본은 미국을 지키지 않는데도 이런 안보 공약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뒤이은 극동 조항(6조) 때문이었다. 즉, 미-일 동맹의 ‘쌍무성’은 미국이 일본을 방어하는 대신 일본은 기지를 제공한다는 데서 확보된다. 기지 제공이란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이에 견줘 한-미는 어엿한 상호방위조약의 구조를 갖고 있다. 조약의 적용 범위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 특히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3조)이 된다. 그에 따라 한국은 미국령인 괌 등이 공격당하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할 조약상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주일미군은 ‘일본 방어’와 ‘극동 사태 개입’을 하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주한미군은 오로지 ‘한국 방어’에만 충실해왔다.

지난달 18~19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IDZ) 근처에서 이뤄진 주한미군 F-16 전투기의 공세적 훈련을 보며, 한-미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느낀다. 미국은 1월23일 공개한 ‘국가방위전략’(NDS)에서 “북한을 억제하는 1차적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자신들은 “결정적이지만 더 제한된 지원”에 머무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머잖아 한국에 순환 배치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여단 등을 괌이나 미국 본토로 빼고,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결정적이지만 더 제한된’ 역할만 수행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한국에 남게 되는 것은 베이징의 턱밑에 자리한 ‘날카로운 비수’인 오산·군산 기지의 미 제7공군뿐이다.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주장하며, 오산에서 출격한 F-16과 F-35로 중국 주요 도시를 타격하면 죽음의 연기가 피어 오르는 곳은 워싱턴이 아닌 서울과 인천이 될 것이다.

미국은 2006년 1월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존중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서해 훈련과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이 보이는 ‘오만한 태도’를 볼 때 이 선언이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부끄럽기 그지없었던 구마오 국장에게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1960년에 이뤄진 조약 개정이었다. 일본은 이를 통해 미국이 자국 내 기지를 활용해 전투 작전 행동에 나설 때는 ‘사전 협의’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훗날 무력하게 가슴을 치며 서울의 ‘검은 연기’를 바라볼 것인가.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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