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앤 비혼” “위염 앤 비염”이 띄운 1위…밈이 바꾼 대중음악 흥행 공식

에이투오 라이트 ‘니온’ 밈. 유튜브 갈무리

“미혼 앤 비혼.” 결혼 얘기가 아니다. 신인 걸그룹 에이투오 라이트(A2O LITE)의 ‘니온’ 후렴구 “니온 앤드 비욘드”가 이렇게 들린다는 데서 시작된 밈이다. ‘위염 앤 비염’ 등 변주가 잇따랐고, 곡 도입부에서 두 멤버가 맞춰 추는 격렬한 군무에는 유명 인물 얼굴을 인공지능(AI)으로 합성한 패러디 영상까지 등장했다.

밈은 이제 막 데뷔한 그룹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에이투오 라이트는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인 이수만 키 프로듀서가 이끄는 에이투오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지난 13일 오후 6시 디지털 싱글 ‘니온’을 공개하며 정식 데뷔했다. ‘니온’은 공개 29시간 만인 14일 밤 11시 멜론 톱100 1위에 올랐다. 음악방송 활동이나 본격적인 댄스 챌린지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대중음악 흥행의 출발점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노래가 먼저 알려지고 노랫말이나 안무가 유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거꾸로 짧은 영상이나 말 한마디, 멤버의 캐릭터가 먼저 대중에게 도달하고, 그 뒤에 “이 사람이 누구지”, “무슨 노래를 부르지”등의 궁금증이 따라붙는다. ‘노래→가수→밈’이 아니라 ‘밈→가수→노래’로 흥행의 순서가 달라진 셈이다.

에이투오 라이트 ‘니온’ 밈. 유튜브 갈무리

케이팝에서 이런 흐름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뉴진스의 ‘하이프 보이’다. 2022년 말부터 쇼트폼에서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며 거리의 행인에게 이어폰 속 음악을 묻는 형식이 유행했다. 여기서 파생돼 무슨 질문을 받아도 느닷없이 “뉴진스의 하이프 보이요”라고 답하고 포인트 안무를 추는 영상이 쏟아졌다. 이미 인기곡이었던 ‘하이프 보이’는 이 밈을 통해 노래 제목 자체가 일종의 유행어가 됐다.

이후 밈과 음악의 관계는 더욱 다채롭게 변했다. 지난 5월 아이오아이의 ‘갑자기’에서는 노래 한 구절이 전혀 다른 영역인 프로야구와 만났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라는 후렴이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의 응원가와 묘하게 겹쳐 들리면서 ‘자려고 누웠는데 양의지’라는 말장난이 탄생했다. 두 노래를 인공지능으로 합친 영상과 각종 패러디가 야구팬을 중심으로 확산됐고 양의지가 직접 아이오아이 멤버 청하, 전소미와 콘텐츠까지 찍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농담이 야구장과 가요계를 누볐다. ‘갑자기’는 5월29일 멜론 톱100 정상에 올랐다.

‘케이비오(KBO)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채널 갈무리

‘역주행 돌풍’을 일으킨 그룹 리센느의 ‘러브 어택’에 이르면 노래와 밈의 경계마저 거의 사라진다. 출발점은 노래도 춤도 아니었다. 거제 출신 멤버 원이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일본인 멤버 미나미에게 “너 이러고 거제 가면 거제 시민들에게 혼난다”고 말하자 미나미가 천연덕스럽게 외친 “거제 야호!”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영상이 퍼지면서 두 멤버의 관계와 캐릭터가 관심을 끌었고 이는 “얘들은 누구냐”는 검색으로 이어졌다. 멜론에서 리센느를 검색한 이용자는 밈 등장 이후 6550% 늘었다. 2024년 발표된 ‘러브 어택’은 순위를 끌어올려 지난 7월 멜론 톱100 1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노래를 듣다가 멤버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밈으로 시작해 멤버를 먼저 좋아한 뒤 노래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

‘케이팝의 밈화’는 몇년 전 케이팝을 휩쓴 ‘댄스 챌린지’와도 차이가 있다. 챌린지는 대개 기획사가 신곡의 포인트 안무를 정하고 가수들이 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준 뒤 팬과 다른 가수가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시작점과 목적지가 비교적 명확했다. 반면 밈은 어느 부분이 선택될지 생산자가 예측하기 어렵다. 노래가 아닌 말 한마디가 뜰 수도 있고, 춤 대신 표정이나 발음이 선택되기도 한다. 심지어 ‘거제 야호’처럼 음악과 무관한 콘텐츠가 노래를 다시 끌어올리기도 한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단일문화(모노컬처)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예전처럼 모두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률이 50%를 넘기는 시대가 아니다. 알고리즘으로 문화 소비가 파편화되면서 모두를 한꺼번에 아우르기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가운데 ‘거제 야호’나 ‘뉴진스의 하이프 보이요’처럼 공통의 놀잇감이 주어지면 패러디와 밈이 양산되면서 다시 대세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밈이 파편화된 음악 소비자들을 잠시 한곳에 모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살차이’ 유튜브 채널 갈무리

다만 이런 변화가 음악산업에 또 다른 부담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 평론가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화제가 돼야 음원 소비가 늘고 팬층 확대와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바이럴 마케팅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밈도 있겠지만 결국 콘텐츠 노출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경쟁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뜻밖의 한마디와 이용자의 호응이 흥행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그 ‘우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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