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8일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한국으로 소환하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비공개 합의’ 원칙을 깨고 북한군 포로 한국행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합의 사실을 부인하자 ‘외교 관계 단절’까지 염두에 둔 외교적 강수를 둔 것이다.
외교부는 이날 “양국 간 제반 현안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 쪽과의 협의를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박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우크라이나 쪽의 공개 사과가 없으면 추가 조처를 하겠다고 예고한 지 엿새 만이다.
국가 간 외교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사를 소환하는 것은 유감 표명이나 항의, 상대국 대사 초치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 조처다. 한국 정부가 현지 대사를 소환하기로 한 것은 2008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항의해 권철현 당시 주일 대사를 불러들인 뒤 18년 만이다.
정부가 대사 소환이라는 초강력 카드를 꺼낸 건 우크라이나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양국이 송환 사실을 비공개하기로 한 합의를 깬 것이다. 이 대통령은 즉각 “아쉽다”며 유감을 표시했으나 우크라이나 쪽은 비공개 합의 자체를 부인했다.
우크라이나는 사과 대신 키릴로 부다노우 대통령실장이 지난달 27일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를 들어 “(남북이) 통제 불가능한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국을 오히려 자극했다. 지난 1일에는 안드리 시비하 외무장관이 이번 사안을 “외교적 오해”라고 규정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2일 엑스(X)에 “예의를 갖춰 아쉽다고 했더니 상대국 국가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비하 외무장관에게) 사과 관련 메시지도 받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좀 차이가 있다”며 “단호한 조처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이 러시아에 경유를 공급했다는 외신을 인용해 “한국의 (대러시아) 제재 정책과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페이스북에 올려 한국을 자극했다.
정부가 대사 소환 조처를 취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러시아와 전쟁 중인 상황이라 이 사건의 여파가 한국과 유럽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향후 “우크라이나도 맞대응 조처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의를 지속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