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 귀향한 레바논인 마주한 참상…전쟁 재개 공포감까지

서둘러 돌아간 집은 잔해더미로 변해…"기쁘면서도 고통스럽다"

이스라엘 공습에 집이 파괴된 레바논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레바논 피란민들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휴전에 당장은 기뻐하면서도 다시 돌아간 집에서 마주한 엄청난 피해와 전쟁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휴전 발표 이후 원래 살던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으로 돌아간 피란민들의 상태를 이같이 보도했다.

가디언이 인터뷰한 모하메드 아슈어씨는 휴전 발표 이후 고향인 샤크라로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차를 몰기 시작했다.

레바논군과 이스라엘군, 친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모두 아슈어씨 같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아직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지만, 44일간 집을 떠나서 있던 아슈어씨는 단 한 시간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처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 수천명의 차량 행렬이 레바논 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면서 원래라면 2시간만 걸릴 운전이 10시간이 됐다.

잔해가 쌓인 도로와 붕괴한 다리도 이들의 귀환을 막지 못했고 이들은 휴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흙길로 운전하거나 리타니 강을 건너면서까지 집으로 향했다.

아슈어씨는 "그들은 내 집이 파괴됐다고 말했지만, 난 가서 직접 보고 싶었다"면서 "여긴 우리 땅이다. 휴전이 짧든 길든, 단 한 시간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피란민들은 한 좌석에 두 명씩 타고, 매트리스와 짐으로 가득 찬 차를 몰았다.

도로변에서는 레바논과 헤즈볼라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이 피란민들을 응원했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으로 승리를 의미하는 브이(V)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축제 같은 분위기는 피란민들이 고향 마을에 도착한 순간 무거워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휴전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레바논 피란민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8세 전기공학자인 하산 나즈디의 마을 스리파도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의 집은 불에 타 검게 변했고, 뒷마당에는 돌무더기와 이웃집의 지붕 잔해가 흩뿌려졌다.

그는 "솔직히 모든 게 엄청나게 변했다"면서 "마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곳이 원래 스리파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휴전 발표 불과 몇시간 전에 스리파를 10여차례 공습했고, 나즈디가 사는 동네의 집 4분의 3이 파괴됐다.

나즈디의 삼촌이자 외과전문의인 와디 누즈데는 "돌아오니 기쁘면서도 고통스럽다. 친구와 동료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잃었고, 파괴된 도로와 마을, 특히 피해가 매우 광범위한 스리파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그는 테브닌 마을의 정부 병원에서 일했는데 이 병원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직원 11명이 다쳤다.

집에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상대방이 휴전을 위반하면 언제든 적대 행위를 재개할 수 있다고 서로 경고하고 있어 휴전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휴전의 주체가 이스라엘과 직접적으로 충돌해온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부라는 점에서 휴전이 미봉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7일 성명에서 "우리는 한 손에 무기를 들고 있으며, 다른 손은 평화를 위해 내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휴전이 항구적 평화가 아닌 싸움의 일시 중단일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잠깐만이라도 상태를 파악하고 싶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일부는 원래 살던 집을 보지조차 못했다.

이스라엘군이 접경 지역 마을에 계속 주둔하면서 다가오는 주민들을 총격으로 내쫓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한 달간 남부 레바논을 장악하면서 일부 접경 지역 마을을 완전히 파괴하기도 했다.

나즈디는 자기는 살던 곳을 다시 볼 수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며 "레바논 남부에는 '집이 없더라도 텐트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텐트에 사는 레바논 피란민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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