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함께하기 위한 선택”…방탄소년단, 고양서 ‘2.0’의 문 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11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이 일을 오래 같이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니까 저희를 믿어주세요.”

11일 밤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월드투어 ‘비티에스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 두번째 공연 막바지에, 알엠(RM)이 말하자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군백기 이후 처음으로 멤버들이 월드투어에 나선 무대였지만, 이날의 관객석은 귀환의 감격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새 앨범 ‘아리랑’에 대한 여러 시선을 의식한 듯, 방탄소년단은 “오래 함께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말로 변화의 이유를 먼저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인지 2시간20여분의 공연으로 증명했다. 3년6개월 만의 완전체 대형 공연이자, 지난 2022년 4월 마무리된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투어의 시작점이었다. 지난 9일과 11~12일 사흘간 13만2천명(회당 4만4천명)이 찾은 이번 고양 공연은 ‘방탄소년단 2.0’의 방향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무대였다.

이날 공연은 시작 전부터 기존 케이(K)팝 무대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관객석을 전부 개방한 360도 무대 위 공중에 떠 있는 대형 스크린에는 수묵화 그래픽이 펼쳐졌고, 대금과 가야금, 아쟁이 섞인 궁중음악이 경기장에 퍼졌다. 화면에는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같은 본조아리랑 가사가 떴다.

방탄소년단(BTS)이 11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오후 7시11분, 복면을 쓴 댄서들이 성화처럼 보이는 빛나는 불꽃을 손에 들고 무대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화염이 치솟았고 새 앨범 ‘아리랑’에 수록된 ‘훌리건’이 시작됐다. 붉게 물든 응원봉과 폭죽, 터져나오는 함성이 한꺼번에 경기장을 감쌌다. 이어 ‘에일리언즈’와 ‘달려라 방탄’까지 초반 3곡이 거침없이 이어지며 고양의 밤공기를 순식간에 달궜다.

오프닝 무대 뒤 멤버들은 감격에 겨운 듯 입을 뗐다. 뷔는 “저희가 정말 오랜만에 360도 공연을 해봤다. 360도로 아미분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기분 좋다”고 했고, 지민은 “오랜만에 ‘아리랑’ 앨범 내고 콘서트 투어 하는데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슈가도 “요소요소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해서 낯설 수 있지만 최선 다해 즐기시기 바란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색채를 강조한 공연이었다. 중앙에는 경회루를 모티브로 한 정자형 파빌리온이 놓였고, 360도 무대 바닥은 태극기를 모티브로 설계됐다. 사방으로 뻗은 돌출무대도 태극기의 건곤감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소속사 빅히트 뮤직은 설명했다. 돌출무대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지우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 멤버들은 사방으로 몸을 열었고, 관객은 어느 자리에서든 멤버들과 닿는 느낌을 받았다. 스타디움 전체를 하나의 세트처럼 쓰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신보 ‘아리랑’ 수록곡 무대는 이번 투어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대목이었다. ‘데이 돈트 노 바웃 어스’에서는 스크린에 전통 탈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미지가 떴고, ‘스윔’에서는 대형 천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경기장을 푸른빛으로 물들였다. ‘메리 고 라운드’에서는 승무에서 영감을 받은 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푸른 망토와 붉은 망토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태극 문양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BTS)이 11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중반부는 방탄소년단 특유의 폭발력을 확인시키는 구간이었다. 히트곡 ‘페이크 러브’가 나오자 운동장은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관객석에서는 ‘떼창’이 터져 나왔다. 이어 ‘낫 투데이’ ‘마이크 드롭’ ‘에프와이이에이’ ‘불타오르네’가 연달아 이어지자 관객은 쉬지 않고 뛰었다. 진이 “핸드폰 내려두시고 같이 노래하고 뛰어보자”고 말한 대로, 이 구간의 경기장은 더 이상 관람석이 아니라 거대한 축제장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보디 투 보디’와 ‘아이돌’로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보디 투 보디’에서는 민요 ‘아리랑’이 흘러나왔고, 깃발과 엘이디 리본이 뒤섞인 퍼포먼스와 불꽃놀이가 더해졌다. 이어진 ‘아이돌’에서는 멤버들과 50명의 댄서가 경기장 트랙을 따라 행진하면서 팬들과 가깝게 만났다. 알엠은 바퀴 달린 가마 위에 올라 관객과 시선을 맞췄다. ‘아리랑’부터 농악대 행진까지 거대한 난장의 느낌이 묻어 나왔다.

다만 ‘보디 투 보디’의 ‘아리랑’ 대목에서는 상징성에 비해 관객의 집단적 호응이 크게 붙지는 않았다. 한국적 색채를 무대 언어로 번역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장면으로 키우는 일은 더 다듬을 여지가 있어 보였다.

공연 후반부 가벼운 캐주얼 복장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은 ‘버터’와 ‘다이너마이트’ 같은 친숙한 노래를 부르며 열기를 끌어올렸다. 알엠이 “지나가던 강아지 철수도 아는 노래”라고 농담을 던져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이후 관객의 즉석 신청을 받은 ‘테이크 투’와 ‘디엔에이’가 이어지며 무대는 축제처럼 변했다. 무겁게 시작한 공연이 끝으로 갈수록 팬들과 장난스럽게 호흡하는 쪽으로 옮겨간 것도 인상적이었다. 변화의 메시지를 내세우면서도 팬들과의 친밀감이라는 오래된 강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1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알엠은 엔딩 멘트에서 “‘2.0’ 제목으로 노래도 내고 많은 변화를 보여드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7명이 이 일을 같이하기로 했다는 점”이라며 “저희가 다 서른이 넘었다. 정말 잘, 오래 같이하기 위해 내린 결정들이니까 저희를 믿어주시고 변화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고양에서 시작한 이번 투어는 17~18일 일본 도쿄돔을 거쳐 북미, 유럽, 남미, 아시아 34개 도시 85회 공연으로 이어진다. 한국 가수 단일 투어 기준 최다 회차다. 공연장에서 만난 40대 아미 김경희씨는 “이전과는 다른 여정이 시작됐다는 신호탄 같은 콘서트였다”며 “여전히 함께이고 영원히 함께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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