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만원으로 가족 5명 생활…아빠의 거부에 '기초수급' 무용지물

위기가구로 발굴했지만 본인 신청 없어 한부모·수급자 지원 못 해

5개월 아기 등 4남매 홀로 육아…건강 악화 끝 극단 선택

"명확한 위기 상황에선 공공기관이 즉각 개입해 지원하는 법적 제도 절실"

숨진 울산 일가족이 살았던 빌라
[촬영 장지현]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울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 5명은 정부의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에 포착돼 복지 공무원이 문 앞까지 찾아갔던 관리 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0여만원의 건강보험료조차 내지 못하던 극한 상황이었지만, '마지막 보루'였던 기초생활수급 신청은 가장의 거부로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19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18일) 숨진 채 발견된 30대 가장 A씨와 그 자녀들은 지난해 3월 이미 복지 사각지대 발굴 명단에 포함돼 관리를 받아왔다.

당시 생활고로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던 A씨는 이후 12월까지 긴급 생계·주거지원비 806만원과 각종 생필품, 식료품 등을 지원받으며 재기를 꿈꿨다.

지속적인 복지 지원으로 잠시 정상 궤도에 오르는 듯했던 이 가정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운 건 지난해 12월 무렵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A씨는 5개월 영아를 포함해 네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둘째 딸과 셋째딸은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인근 어린이집에 맡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맏딸도 하교 후에는 어린이집에서 함께 돌봤다. 그러나 생후 5개월 된 막내 아들은 직접 돌봤다.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챙기며 A씨 건강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끔 나가던 일용직 근로조차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수입원은 매달 나오는 아동수당과 부모 급여 등 140만원이 전부였다. 5인 가구 식비와 월 60만원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외상을 할 만큼 경제 상황이 악화했다.

편의점주는 "3∼4개월 전부터 10만원, 12만원씩 과자랑 라면 같은 생필품을 잔뜩 외상으로 산 뒤 다음 달에 갚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종종 아이들 손을 잡고 오곤 했는데, 애들은 올 때마다 인사도 잘하고 명랑했다"며 "열흘쯤 전에 아빠 혼자 와서 과자를 17만원어치나 사 갔는데, 그게 아이들이 먹는 마지막 간식이 될 줄은 몰랐다"고 눈물지었다.

숨진 울산 일가족이 살았던 빌라
[촬영 장지현]

건강보험료 100여만원이 체납되는 등 다시 위기 징후가 포착되자, 지역 행정복지센터에서 지난달부터 여러 차례 가정을 방문해 기초생활수급과 한부모가족 지원 신청을 독려했다.

그러나 '신청주의'라는 복지제도 문턱이 발목을 잡았다.

지원받으려면 당사자가 직접 신청서를 쓰고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해야 하지만, A씨는 매번 미온적이었다.

상담을 위해 찾아온 담당자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애들 밥 주고 나갈 테니 밖에서 기다리라"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센터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수급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며 "물품 지원은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근본적 해결책인 수급 신청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지자체가 설득 작업을 벌이던 중 비극이 발생한 만큼, 명확한 위기 사유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 신청 없이도 공공기관이 즉각 개입해 지원 체계를 가동하는 법적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자는 "제도를 몰라서 못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신청 의사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한 법적 한계가 있었다"며 "명확한 위기 상황에서는 신청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지원을 연계해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후 4시 48분께 울주군 한 빌라 방 안에서 30대 남성 A씨와 미성년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jjang23@yna.co.kr

조회 17,589 스크랩 0 공유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