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중동 지역 전반으로 번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양쪽 충돌이 장기화하면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 급등 등 공급망 충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경제 전반에 부정적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3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에너지 수급이다. 이란이 봉쇄하고 나선 중동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에너지 대동맥’이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약 70%로 이 중 상당수가 호르무즈해협을 지난다.
현재 국내 석유제품 비축분은 208일분(1억9200만배럴)로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 석유화학, 해운, 항공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군사 충돌이 주요 산유국까지 확산하며 현재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뛴 국제 유가가 향후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이란을 포함한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높지 않지만, 직접적인 수출 타격보다 공급망 악화에 따른 비용 급등 부담이 훨씬 큰 상황이다.
특히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석유화학 업계에는 이번 사태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납사)를 주원료로 하는 까닭에 생산 원가가 치솟으며 부진의 늪이 깊어질 수 있다. 산업통상부는 “수입 납사의 호르무즈 경유 비중이 54%”라고 했다.
수입 원유를 정제·가공해서 판매하는 정유 기업들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큰 폭으로 뛰며 정제 마진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수요 위축, 경기 둔화 등으로 악재를 맞는 건 마찬가지다.

유가 급등은 국내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 상승을 초래해 제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직접적인 유류비 급등과 운항 차질을 겪는 항공사 등 운송 기업뿐 아니라, 건설·자동차·철강 등 주요 업종들까지 원가가 상승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다.
수출 기업들이 이용하는 해운 운임도 꿈틀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항공기로 실어 나르는 스마트폰은 화물 물류의 거점인 중동 길이 막히면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동을 신시장으로 점찍어 적극 진출해온 식품·화장품 업계 등 역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펴낸 보고서에서 “국내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이번 충격으로 경기 회복 국면 안착이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경제의 ‘스크루플레이션’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크루플레이션이란 ‘쥐어짜다’라는 뜻의 스크루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로, 원유 가격 급등이 국내 물가 상승, 민간 소비 위축을 초래해 내수 경기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고유가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한 거시 경제 정책과 원유·원자재 등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종오 이재호 이주빈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