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국가 주도 성장’의 성공 조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다시금 국가적 의제가 되었다. ‘성장률 7% 달성’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약속이 허망하게 무너진 뒤 박근혜 정부는 성장 대신 행복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유행시켰지만, 이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가까운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달랐다. 집권 이후 줄곧 ‘국가 주도 성장’을 강조해 왔다. 그러니까 18년 만의 성장 담론 부활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속적인 잠재성장률 저하와 깊어가는 지경학적 위기 속에 국가가 성장을 담보하겠다는 건 무리한 목표 설정이 아닐까? 여기엔 다른 맥락이 있다. 지금 인류는 인공지능·디지털·녹색을 축으로 경제·사회의 대전환 과정에 놓여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성장은 이 전환의 과정에서 어떤 기회를 잡느냐에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다.

산업정책의 화려한 ‘부활’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 재설계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되 그 방향과 지리적 배치에 깊숙이 관여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변화를 가속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국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을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라고 불렀다.

보통 산업정책은 후발국의 ‘따라잡기’ 수단으로 여겨졌다. 국가가 경제 운용의 총감독으로서 민간의 ‘될성부른 나무’를 선별해 자원을 할당했다. 독일과 일본이 이에 능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4마리용들’이 그 재미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를 규율하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들어서면서 산업정책은 금기시되었다. 우리의 경우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요받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산업정책과 강제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정책은 부분적으로 시장 실패에 대한 처방이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정부 실패가 학계와 정책계를 주름잡았다. 정보 불완전과 관료제 때문에 정부는 자원 배분을 최적화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퍼진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 탓에 우리보다 더 늦게 산업화 단계에 진입한 나라들은 아예 산업정책을 구사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같은 연구자는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정의했다.

이런 사정은 오늘날 산업정책의 세계적 부활을 한층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현재 되살아나고 있는 산업정책은 과거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무엇보다 주체와 목적이 다르다. 과거엔 주로 후발국이 선도국 추격을 위해 산업정책을 구사했다면, 지금은 선도국이 자국의 지위 방어 또는 신산업 분야에서 지위 선점을 목적으로 산업정책을 편다. 그러다 보니 산업정책의 적용분야도 달라졌다. 공업화에 막 들어선 나라들이 주체였던 과거에 산업정책은 주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적용되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AI)·반도체·신에너지 등 첨단·신생산업을 육성하고 업계의 표준제정·규제설계를 통해 산업 자체를 정의하는 데로, 나아가 이를 뒷받침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우는 데까지도 산업정책이 미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레카 유하스 등 4명의 연구자는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각국 정부가 낸 약 4만7천건의 정책을 분석해, 산업정책 활용이 높은 증가추세에 있으며 그 사용이 개도국보다는 고소득국에 집중돼 있음을 실증한 바 있다.

이 흐름은 미국이 주도한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팬데믹 이후 회복과 사회·기후 의제를 묶어 내놓은 대규모 투자 구상인 ‘더 나은 재건’ 계획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리더십을 둘러싼 정책은 ‘칩스법’ 같은 형태로 제도화되었는데, 이는 제조역량 확충을 위한 대규모 재정 인센티브와 연구개발(R&D) 투자, 그리고 국제협력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포함한다. 청정에너지 전환에서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제 인센티브는 전환의 속도·입지·공급망을 정책 설계로 조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산업정책의 성격을 띤다.

유럽·일본 등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연합은 넷 제로(Net Zero·탄소중립) 기술 제조역량의 목표치(2030년 ‘연간 배치 수요의 40%’)와 인허가·조달·투자 플랫폼을 결합한 법안을 마련했고, 일본도 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보조금 패키지를 가동하며 공급망 재편 경쟁에 동참했다.

이와 같은 산업정책의 주체·목표·영역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부와 민간의 관계 변화를 이끈다. 과거엔 정부가 정보와 자원의 우위를 바탕으로 민간을 이끌었다. 타국의 선례를 따르는 입장이었으니 ‘정답’이 뭔지도 대충은 알았다. 지금은 좀 복잡하다. 산업 정보 면에서 민간은 정부를 능가하는 역량을 갖췄지만, 최근 경제의 안보화 추세에 따라 여전히 정부와의 협업은 불가피하다. 정부도 민간에 자원을 제공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과와 책임을 요구해 다른 정책목적을 함께 달성하고자 한다. 양자 관계에서 전략적 성격이 점차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정책의 성공을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로 만든다. 종전보다 정책의 불확실성과 실패의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각국을 둘러싼 국제정치경제 상황도 예측불허다. 과거 우리가 잘했던 산업정책에서는 ‘승자를 고르는 능력’이 결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민간과의 관계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훨씬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국가 역량 - 산업정책 성공을 위한 열쇠 

더 이상 후발국의 전유물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면서, 산업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 간 관계의 문제로 일반화될 수 있다. 캐나다의 정치학자 댄 브레즈니츠 등은 그렇게 이해된 산업정책은 본질적으로 거버넌스 문제라면서, 그 과제를 △생산적 투자를 위한 국가-비즈니스-노동 연합 형성 △민간과 협력하면서도 규율할 수 있는 국가의 역량 △생산적 기업에 대한 장기 약속을 가능케 하는 정치 체제 등 세 축으로 정리한다.

최근 산업정책 관련 주목할만한 연구를 다수 내놓고 있는 레카 유하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이들은 모두 산업정책은 더 이상 실행 ‘여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의 문제라면서, 그 성공을 위한 조건을 다루는데, 이는 결국 ‘국가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수렴한다. 단순히 정부가 ‘돈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민간의 투자와 학습을 유도하는 ‘조건부’ 지원체계를 설계하는 정치적·행정적·기술적 역량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성장·안보·녹색·균형발전 등 산업정책 연관 목표의 위계와 우선순위를 조정·결정하는 역량 △한정된 예산을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집중하는 정치적 역량 △민간과 협력하면서도 특정 기업의 사익에 포획되지 않는 균형감각 등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가 주도 성장’이 오늘날 확장된 개념의 산업정책으로 나타난다면, 산업정책의 성공은 공적·사회적 자원을 동원해 이를 경제에 적절히 공급하는 국가의 역량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역량은 정책의 직접적 수혜 대상인 기업들과 무엇을 주고받으며 전략적 관계를 형성할지를 명시한 ‘계약서’를 얼마나 정교하게 작성하느냐로 드러날 것이다.

이 계약서는 △정책의 목표(혁신, 공급망 대응, 고용증대, 탄소감축, 지역발전) 및 위계 △보조금·세제·정책금융 등 정책지원 항목들의 패키지 △투자, 고용·훈련, 연구개발, 지역발전 등과 관련된 민간의 의무 △평가를 위한 기업의 데이터 제공 의무 및 정부의 감사 권한 △성과 목표 관리 등의 세부사항들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기꺼이 정부의 미션에 동참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적절히 증진하지 못했을 때 지원을 회수할 수 있는 단호한 계약 설계가 성공의 열쇠라는 게 다수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하나씩 국회 문턱을 넘고 있는 광역 지자체 행정통합 특별법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주지하듯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국가 주도 성장의 핵심 요소로 지방 주도성을 꼽고 있다. 이는 향후 정부의 산업정책의 주된 무대가 지방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데, 현재 지방은 정부의 국가균형성장 구상에 맞게 초광역화의 길목에 있다. 그렇다면 위 특별법은 우리 정부의 ‘국가 주도 성장’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는 최상위의 계약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앞서 논한 기준들에 부합하는가? 법률에 세부사항을 모두 담을 수야 없으니 향후 다방면에서 보완작업은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야 한다. 그것도 결국 국가의 역량이다.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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