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밸런타인데이(14일)다. 로맨틱한 시간을 바란다고? 올림픽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런데 밸런타인데이에 결승전이 열린다면? 그리고, 서로가 순위 경쟁자라면?
킴 메일레만스(벨기에)와 니콜 로차 실베이라(브라질)가 그런 상황이다. 이들은 스켈레톤 동성 부부다. 2019년 월드컵 투어에서 만났고, 2021년 공개적으로 연인 관계임을 밝혔다. 팬데믹 기간 많은 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단기 임대 숙소를 함께 쓰다 보니 덜컥 사랑에 빠졌다.
2024년,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 똑같은 약혼반지를 구입했고, 똑같이 브라질 보트 여행에서 청혼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캘거리에 살면서 훈련도 같이 한다. 이들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키스를 하며 서로의 선전을 기원한다.

각각 다른 나라를 대표하고 있지만 올림픽 선수촌에서 방을 같이 쓴다. 보통은 같은 나라 대표팀 동료들끼리 숙소를 쓰는 게 관례인데, 양국 올림픽 위원회가 배려를 해줬다. 에이피(AP)에 따르면, 이들의 방 절반은 벨기에 스타일로, 절반은 브라질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여자 스켈레톤 1, 2차 시기가 끝난 상황(13일)에서 메일레만스는 선두와 0.84초 차이로 8위에 올라 있다. 실베이라는 1.30초 뒤진 12위다. 이들이 올림픽에서 맞붙게 된 것은 결혼 후 처음. 메일레만스는 이번 시즌 7개 대회에서 6차례 포디움에 오른 터라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2022년 베이징 대회 때 실베이라는 13위, 메일레만스는 18위를 기록한 바 있다.

스켈레톤 3, 4차전이 발렌타인 데이(현지시각 14일 오후 5시)에 열리는 탓에 이들도 순위 경쟁 최전선에 서 있다. 발렌타인 데이를 위한 선물은 서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일레만스는 에이피와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매일이 어느 정도는 발렌타인 데이와 같다. 우리의 사랑은 매일 우리 스포츠의 일부와도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겼으면 좋을까. 메일레만스는 “누가 시상대에 오르든 상관이 없다. 결국 우리 팀의 승리니까”라고 답했다. 실베이라는 다른 외신과 인터뷰에서 “파트너와 함께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면서 “올림픽은 극도로 스트레스가 많고 압박감이 심한 나날이 이어지는데, 곁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저에게, 그리고 제 경기력에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선수 생활 중 가장 정신 없는 몇 주 동안에도 평온함과 안정감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동성 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몇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는 더 특별할 수 있다. 메일레만스는 이탈리아를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장소”라고 했다. 얼음 트랙 위에서는 뜨거운 경쟁자이지만, 삶이라는 트랙 위에서는 서로의 가장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는 이들에게 이번 올림픽은 그 자체로 가장 빛나는 금메달이 아닐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