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한국 맛에 중독되는 중입니다. K- 푸드는 세계 정복 중..

1. 팔도 도시락 — 러시아에서 컵라면의 대명사가 된 사각형 상자

 

팔도 도시락이 러시아를 정복한 건 거창한 마케팅이 아니라 완전한 우연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부산항에 드나들던 러시아 선원이 팔도 도시락을 처음 집어 들었다. 딱 보는 순간 왠지 낯설지 않았다. 다른 컵라면은 전부 원형인데, 도시락만 사각형이었던 것. 러시아에서는 수프를 담아 다니는 사각형 금속 용기가 흔했는데, 딱 그 생김새였다. 거기다 칼칼한 국물 맛이 러시아 전통 수프와 비슷했으니, 첫 만남부터 이질감이 없었다.

 

입소문은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퍼졌다. 팔도는 이 흐름을 보고 1997년 현지 사무소를 차렸다. 연구원들이 러시아 가정집을 직접 돌아다니며 식습관을 분석한 결과, 마요네즈 동봉 제품을 만들고, 국물은 닭고기 베이스로 바꾸고, 젓가락 대신 포크를 넣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러시아 용기라면 시장 점유율 60%. 2013년 러시아 매출이 1900억 원으로, 한국 내 매출 50억 원의 38배였다. 급기야 러시아에서는 컵라면 자체를 그냥 '도시락'이라고 부르게 됐다. 복사기를 '제록스'라 부르듯, 한국 브랜드 이름이 러시아어 일반명사가 된 것이다.

 

러시아 현지에서 판매하는 팔도도시락/사진제공=팔도

2. 삼양 불닭볶음면 — "이게 먹을 수 있는 거야?" 가 마케팅이 된 라면

 

삼양식품은 오랫동안 농심 그늘에 가려 국내 라면 시장 3위에 머물던 회사였다. 그런데 2012년 불닭볶음면을 내놓는다. 콘셉트는 단순하고 극단적이었다. 그냥 최대한 매운 것.

 

국내 반응이 갈리는 사이, 이게 해외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외국인들이 불닭볶음면을 먹다가 경악하는 영상이 하나둘 올라온 것이다. "이게 진짜 먹는 음식이야?", "혀가 녹는다"는 반응이 오히려 전 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에 BTS 지민이 즐겨 먹는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팬덤이 구매로 연결됐고, '불닭 챌린지'가 SNS를 타고 번졌다. 아이돌 팬덤이 라면 소비로 이어지는, 꽤 신기한 연결고리였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3위인데, 해외 수출에서는 1위 농심을 앞질렀다. 2024년에는 삼양식품 시가총액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농심을 추월했다. "국내에선 3등, 세계에선 1등"이라는 역설이 현실이 된 것이다.

불닭 시리즈.<삼양식품>

3. 오리온 초코파이, 오! 감자 — 중국에선 "한국은 몰라도..."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오리온 제품은 사실 초코파이가 아니다. 바로 오!감자다.

 

오리온이 초코파이로 중국 시장에 자리를 잡은 건 1990년대 일이다. 그런데 2006년 감자 스낵을 추가로 들고 들어갔더니, 이게 오히려 초코파이를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오!감자 하나가 오리온 중국 전체 매출의 40%를 책임지고 있다. 초코파이로 문을 열고, 감자 스낵으로 중국인의 간식 취향을 통째로 장악해버린 셈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단순하다. 중국은 감자 스낵 시장 자체가 크고, 오리온이 그 시장에 일찌감치 프리미엄 이미지로 진입했다. 기존 중국산 스낵들이 저가 경쟁을 벌이는 사이, 오리온 오!감자는 한국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을 무기로 조금 비싸도 믿을 수 있다는 포지션을 굳혔다. 2014년 단일 제품 매출 1880억 원을 찍으며 오리온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국가 매출 2000억 브랜드' 등극에 핵심 역할을 한 것도 이 제품이었다.

 

초코파이가 오리온의 간판이라면, 오!감자는 실질적인 돈줄이다. 브랜드 얼굴과 매출 기여가 다른 제품인 구도. 오리온이 중국에서 단순한 '한국 과자 회사'가 아니라 현지 식품 시장의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초코파이 하나에 기대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덕분이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오리온 '오!감자'(呀!土豆) / 오리온 제공

4. 비비고 냉동만두 — 미국에서 중국 만두를 이긴 한국 만두

냉동만두 시장에서 한국이 미국 1위를 차지했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만두는 중국 음식이고, 중국계 미국인 인구도 훨씬 많고, 링링이라는 중국 브랜드가 25년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비비고가 그 링링을 2016년에 뒤집어버렸다.

 

비결은 역설적으로 "굳이 한국 만두라고 고집한 것"에 있다. 미국인에게 친숙한 'Dumpling'이라는 이름 대신 '만두(Mandu)'라는 한국어를 그대로 썼다. 차별화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철저한 현지화도 병행했다. 미국 소비자가 익숙하지 않은 부추 대신 선호도 높은 고수를 넣은 '치킨&고수 만두'를 현지 전용으로 개발했다. "한국스러움"은 유지하되, 속재료는 현지 입맛에 맞게 바꾼 것.

 

2024년 기준 북미 냉동만두 시장 점유율 44.5%로, 2위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 북미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비비고 만두' (출처 : CJ제일제당)

슈완스 인수를 통한 CJ제일제당의 미국 매출 성장 (출처 : CJ제일제당)

 

 

5. 메로나 — 브라질에서 고급 디저트가 된 800원짜리 아이스크림

메로나의 브라질 진출기는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스토리다.

 

시작은 교민이었다. 1998년쯤 상파울루에 살던 한인이 한인 상점에 메로나를 들여다 팔기 시작했다. 교민들이 향수 달랠 때 사 먹는 아이스크림 정도였다. 그런데 2007년, 그 교민의 동생 Henrique Lee가 메로나 전문 수입·유통업체를 직접 차리고 동양인 밀집 지역 리베르다지의 가게들에 깔기 시작했다. 현지 축제에 후원으로 뿌리기도 했다.

 

리베르다지를 찾은 브라질 젊은이들이 난생처음 보는 선명한 초록색 아이스크림에 신기해했고, 먹어본 뒤 SNS에 올리면서 바이럴이 터졌다. 남미 아이스크림 시장은 원래 초콜릿 일색이었는데, 상큼한 과일맛 초록색 아이스크림이 눈에도 띄고 맛도 달랐던 것이다.

 

2008년에는 상파울루 무역관이 "메로나 열풍"을 공식 보고했다. 가게들은 물량이 없어 애를 태웠고, 레스토랑에는 '메로나 판매' 문구가 붙은 곳과 안 붙은 곳이 나뉠 정도가 됐다. 브라질 국영TV까지 "일본 스시에 이어 메로나가 브라질 디저트 문화를 바꿨다"고 보도했다.

 

빙그레는 2014년 브라질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빙그레 역사상 첫 해외 법인이었다. 한국에서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브라질에서는 고급 레스토랑 디저트가 된 것이다.

세계가 한국 맛에 중독되는 중입니다. K- 푸드는 세계 정복 중..

 

 

6. 레쓰비 — 영하 30도 러시아에서 캔커피를 팔려면

레쓰비의 러시아 진출기는 한마디로 "실패에서 배운 성공"이다.

 

2005년 첫 수출 매출은 15만 달러, 완전한 부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러시아는 냉대 기후라 캔커피를 상온에 두면 그냥 차갑거나 얼어버린다. 아이스커피 문화 자체가 없는 나라에 시원하게 마시는 캔커피를 들고 간 것이다.

 

롯데칠성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한국식 온장고를 러시아 매장에 직접 들여놓은 것이다. 차가운 음료가 아니라 따뜻한 음료로 포지셔닝을 바꿔버렸다. 문화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접근이었다.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2005년 15만 달러였던 수출액이 2010년 212만 달러, 2014년 692만 달러로 뛰었다. 맛도 현지화해서 러시아 전용으로만 9가지 맛을 따로 출시했다. 한국에선 그냥 레쓰비 하나인데, 러시아에선 오히려 종류가 더 다양한 셈이다.

 

지금은 밀키스와 함께 러시아 음료 시장 점유율 80%를 찍고 있다. 탄산음료 하면 밀키스, 캔커피 하면 레쓰비. 팔도 도시락처럼, 러시아에서 한국 브랜드가 카테고리 자체를 장악한 또 하나의 케이스다.

 

레쓰비러시아 해외에서 사랑받는 우리나라음료 레쓰비캔커피

 

7.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려는 노력

가장 흥미로운 건 성공한 제품들의 공통점이 "의도하지 않은 시작"이라는 점이에요. 팔도 도시락은 부산항 선원의 우연한 구매, 메로나는 교민 한 명의 향수, 레쓰비는 실패한 첫 수출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러시아를 공략하겠다"고 덤빈 게 아니라, 작은 신호를 포착하고 거기에 맞게 제품을 바꾼 것이 결정적이었다.

 

불닭볶음면은 반대로 재미있는 케이스예요. 유일하게 처음부터 극단적인 콘셉트를 밀어붙인 경우인데, 그게 오히려 챌린지 문화와 딱 맞아떨어졌다. 전략이 아니라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런 성공들이 지금도 재현 가능한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K팝·드라마 덕에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 자체가 높아졌지만, 그 이전에 성공한 제품들은 한류와 무관하게 순전히 맛과 현지화로 뚫었다. 한류 바람을 등에 업고 진출하는 제품들이 그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진짜 중요 문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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