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회 할말이슈] 서울 탑골공원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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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상징이자 어르신들의 해방구였던 탑골공원에서 바둑과 장기판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구청은 질서 확립과 환경 개선을 내세웠고 인근 상인들과 젊은 행인들은 깨끗해진 거리를 반깁니다.

 

하지만 그 정갈해진 풍경 뒤에는 갈 곳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는 노인들의 허탈한 눈빛이 남았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노년을 대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도시의 공원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하지만 그 모두의 기준은 종종 생산성과 쾌적함이라는 잣대로 재단됩니다. 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무질서함 속에는 평생을 일궈온 이들이 유일하게 허락받았던 사회적 소통의 원형이 있었습니다.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혹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들의 놀이 문화를 들어내는 것은 결국 노년의 삶을 도시의 외곽으로 혹은 보이지 않는 실내로 격리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사 속 한 노인의 고백처럼 노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력이 쇠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익숙했던 세계로부터 서서히 밀려나는 경험입니다. 수십 년간 지켜온 루틴이 민원의 대상이 되고 내가 즐기던 공간이 개선의 대상이 될 때 노인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탑골공원을 떠나 다시 종묘로 혹은 복지센터로 발길을 옮기는 그들의 뒷모습은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이동을 대변합니다.

 

물론 공공장소의 질서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도시의 품격은 갈등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는 데서 나옵니다. 바둑판을 치우는 대신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노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공간을 관리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할 순 없었을까요?

노년은 우리 모두의 미래입니다. 지금 우리가 노인들의 장기판을 밀어낸 자리에 세운 것은 깨끗한 보도블록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가 마주하게 될 환대 없는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이 외로움과 이동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도시의 설계도 안에 그들의 투박한 웃음소리가 머물 자리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탑골공원이 폐쇄되거나 규제가 심해지면 약 700미터 떨어진 종묘광장공원으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규제가 생기면 다시 또 다른 골목이나 근처 공원으로 밀려나는 '메뚜기식 이동'을 반복합니다.

 

​가난한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빈곤율이 그만큼 높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기록 뒤에는, 갈 곳을 잃고 거리와 지하철을 떠도는 수많은 어르신의 일상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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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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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ra
    노인들이 갈만한 곳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탑골공원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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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s
      작성자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고 노년의 재미를 느끼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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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도라에몽
    쾌적환 환경 뒤에 숨겨진 노인들은 허망한 눈빛ㅠㅠ너무 세상이 각박하게 느껴지네요 노인들이 그저 남은 삶을 연명하는게 아닌 다양한 취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살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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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s
      작성자
      다른 장소를 마련해주기라도 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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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탑골공원 폐쇄는 정말 잘한일 같아요 그동안 잘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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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s
      작성자
      다만 노인들 쉼터라도 대체제가 있음 좋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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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리링
    어르신들이 갈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고 좋게 개선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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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진
    그러게요 이번에는 복지센터로 가신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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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컨드네임#V5qq
    맞는 말씀이시네요 어르신들의 놀거리를 정부가 제공해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