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어떤 언어들이 더 논리적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예컨대 “명확하지 않으면 프랑스어가 아니다”라는 경구는 프랑스어의 명료성과 논리성을 역설한다. 그런데 이는 유럽에서 근세 이후 자국어의 높은 위세에 우쭐거리던 프랑스인의 자화자찬에 가깝다. 프랑스어나 영어는 발음과 어긋나는 철자 탓에 악명이 높은데 이런 특징은 논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내재적으로 더 논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언어는 따로 없으며 언어 규칙 자체가 늘 논리성을 따르지도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사람이 소통하며 맞춰가다 보면 말 속에 이런저런 틈새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종종 특이한 말을 쓸까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우리’의 용법이 그렇다. 개인차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제 가족을 일컬을 때 ‘나의/내’보다는 ‘우리 엄마·아들·남편’처럼 말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특히 배우자에 대한 ‘우리’라는 지칭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묘한데, 듣는 이가 외국인이라면 배우자가 여럿인가 싶은 착각이 들 법하다. 외동도 ‘우리 엄마·아빠’라고 말하곤 한다. 친구끼리 모인 자리에서 누가 ‘우리 엄마’라고 한다면 그 역시 십중팔구 화자의 어머니만 일컫는다.
여기서 ‘우리’는 국어사전의 정의대로 말하는 이와 관련된 것을 친근하게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사전 예문의 ‘우리 동네·학교’는 ‘우리 마누라·신랑’과 성질이 좀 다르다. 한동네에 살거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많으니 반드시 그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여럿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이라든가 특히 배우자를 가리킬 때의 ‘우리’는 화자 혼자와의 관계를 말하므로 ‘우리 식구·가족’의 구성원인 ‘우리’라고 다시 풀어볼 수 있겠다. 즉 ‘우리 가족 중에서 나(화자)를 기준으로 엄마인 사람’ 등을 뜻한다. 혼자 사는 사람도 흔히 ‘우리 집’이라고 말하는데, 일인가구도 엄연히 하나의 가구인 현실에 오히려 잘 들어맞는다.
영어와 견주면 이런 용법 차이가 두드러진다. 영어에서는 남에게 제 가족 얘기를 할 때 무조건 my mom·son(내 엄마·아들)이다. ‘우리’는 같은 가족끼리 얘기하는 경우라든가, 남에게 얘기할 땐 부모가 함께 있다면 our son이라고 하는 식이다. 가장 보편적인 일부일처제에서 자기 배우자를 일컬을 때는 당연히 our가 나올 수 없다. 집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함께 살든 혼자 살든 남에게 말할 때는 my home·house·place다. 영어는 화자 중심이고 한국어는 관계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유별나 보이긴 해도 비슷한 언어가 몇개 있다. 대표적으로 몽골어 манай(마내: 우리의)도 ээж(에에찌: 엄마)나 гэр(게르: 집) 앞에 붙어서 한국어 ‘우리’처럼 쓰인다. 튀르키예어도 bizim(비짐: 우리의)의 용법이 꽤 비슷하다. Bizim eve gel(비짐 에베 겔: 우리 집에 와)은 영어의 Come over to my place에 해당한다. 일본어는 제 가족을 일컬을 때 ‘나’나 ‘우리’ 같은 대명사보다는 うち(우치: 안, 속, 우리 집)를 자주 사용하고, うちのお母さん(우치노 오카산: 우리 엄마)처럼 쓴다. 우리 집 울타리를 바깥과 구별한다는 점에서 한국어와 일맥상통한다. 가족주의나 소속감을 중시하는 문화도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한국어 ‘우리’는 포함과 배제의 구별이 없으나 ‘저희’는 자기가 속한 무리를 이르는 낮춤말이라 청자를 배제하는 셈이다. ‘우리’를 쓸 자리에 ‘저희’라고 잘못 쓰는 사람이 많다. 이를테면 어느 회사원이 제 회사의 사장에게 말할 때 ‘우리 회사’라 하지 않고 ‘저희 회사’라 말하면, 듣는 사장이 딴 회사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당연히 동료끼리도 ‘우리 회사’가 맞다. 이때도 서로 높임말을 쓰는 사이거나 상사가 있다면 ‘저희 회사’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제 부모한테 높임말을 해도 당연히 ‘우리 가족’이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어 경어법이 점점 엉망진창이 돼가면서 이런 혼란이 퍼졌겠지만, 방송 언어의 악영향도 작용했을 듯싶다. 토크쇼에서 출연자들끼리 얘기하는데 ‘저희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때는 좀 헷갈리기도 한다. ‘저희’가 시청자나 청취자를 향한 낮춤말로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저희’를 아무렇게나 섞어 쓰는 게 늘었겠고 그걸 접하는 이들도 영향을 받아 가뜩이나 무너진 경어법이 더욱 망가지는 듯하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의 경어법 항목도 굉장히 어정쩡하다. “윗사람이나 남에게 말할 때는 자기와 관계된 부분을 낮춰 ‘저희 가게·학교·회사’ 등과 같이 ‘우리’ 대신 ‘저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만 보면 직장 상사에게라든가 학생이 교사한테 말할 때처럼 ‘윗사람’한테는 ‘저희’를 쓰는 게 옳다고 착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나라에 대해서는 ‘저희 나라’로 써서는 안 되고 항상 ‘우리나라’로 써야 한다.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같은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저희 나라’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고 제대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그냥 우리끼리 말하는 것이라 ‘우리’다.
한국어 경어법 혼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과 더불어 갑질 풍조나 극단적인 충돌 회피 성향 등 여러 사회심리적 이유도 맞물려 있다. 한국인은 집단으로서 가장 본원적인 가족과 가장 추상적인 나라를 말할 때는 ‘우리’를 잘 붙이는데, 막상 실질적으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서로 서먹하게 몸단속하다 보니 일단 ‘저희’부터 붙이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그저 언어 변화의 양태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왕이면 ‘우리’를 되찾는 게 우리를 되찾는 길이 아닐까.

번역가 신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