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불안정 수당’ 지불할 수 있을까 [아침햇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김회승│논설위원

삼성전자 노조가 올해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면서 파업 불사를 예고했다. 한때 무노조 신화를 자랑했던 삼성의 쟁의 예고도 이례적이지만, 요구 수준 또한 역대급이다. 노조는 애초 영업이익의 10%를 내걸었다가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이 나오자 요구 수준을 더 높였다고 한다. 증권가가 예상하는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원가량이라니 노조 요구가 관철된다면 성과급 규모가 40조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 연간 삼성전자 연구개발비(38조원)보다 많고, 주주 배당금(11조원)보다 4배나 크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 수는 13만명에 이른다. 가히 세기의 임금협상이라 할 만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사상 최대 실적 전망에 따른 정당한 보상 요구라고 말하지만,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초격차 확보를 위한 미래 투자가 줄어들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고, 주주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기는 건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불과 3년 전 반도체 불황으로 ‘성과급 0원’을 감수했던 직원들은 이번엔 단단히 벼르는 분위기다. 부침이 심한 반도체 업황의 특성상, 물 들어올 때 노를 세게 저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만에 조합원 수가 9배 가까이 급증해 절반을 넘었다니, 이번 임금 교섭에 임하는 의지를 능히 가늠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40조원대 성과급 투쟁은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 종사자와 비정규직)에 체류하는 대다수 임금노동자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자신의 연봉으론 10년을 모아야 할 큰돈을 단 한번의 성과급으로 손에 쥔다니 일단 부럽지만, 내 생애엔 도저히 간극을 메울 수 없는 넘사벽이라는 허탈함. 원청과 함께 일군 실적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내 임금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냉정한 현실.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흔들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보수를 더 많이 받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유연성 비용을 노동자에게 현금으로 보상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불안정 노동에 대한 높은 보상은 고용의 유연성(기업 이익)과 안정성(노동자 이익)을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실제 몇몇 선진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더 높은 시급이나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캐주얼 로딩’)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기본 시급의 25%를 추가로 지급하고, 프랑스(‘불안정 수당’)는 기간제 계약이 끝날 때 일종의 퇴직금으로 계약기간 총급여의 10%를 더 준다.

무엇보다 이런 보상 체계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기업의 지불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처럼 대기업이 하청 단가를 후려치는 구조에서는 중소기업이 노동자에게 ‘불안정 프리미엄’을 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다. 기업별 노조인데다 직무급제도 뿌리내리지 못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회사 직원이냐에 따라 사실상 임금수준이 결정된다.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운다는 자동차 작업장에 보상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대통령 말처럼 ‘상식’이 되려면 가야 할 길이 한참 멀다.

우리 노동시장은 ‘보호받는 고임금’(대기업 정규직)과 ‘보호받지 못하는 저임금’(중소기업·비정규직)이 사실상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구조다. 비정규직 처우는 불안정 고용에 대한 프리미엄은커녕 페널티에 가깝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보상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되는 순간 임금은 확 깎이고 사회적 보호망은 대부분 사라진다. 그 공포와 박탈감이 유난히 클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선진국 역시 숙련도와 책임 범위, 복리후생 등의 차이 때문에 정규직의 총보상이 높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대부분 임금 프리미엄에 앞서 차별 금지에 무게중심을 둔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돈을 더 얹어주는 것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아무 곳에서나 부리지 못하게 제한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유럽 주요국들이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비정규직 채용 자체를 까다롭게 만들어 사용 사유를 강력히 제한하는 이유다.

불안정 노동에 대한 보상 체계는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원하는 이들은 희소하니 당연히 시장가격(임금)이 높을 수밖에 없고, 똑같은 일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비슷한 수준의 보상이 이뤄지는 걸 당연한 시장 논리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고용 비용 상승을 기업이 감내하는 게 아니라, 노동의 격차를 줄이는 과정의 책임을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갖는 문제이니까.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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