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은 나침반 아닌 온도계…학술용병? 도구를 목적으로 오인"

'亞 최상위' 홍콩대 랭킹 업무 담당했던 이정재 시드니대 교수

"숫자 목매는 사이 '무엇이 좋은 대학인가' 근본 질문은 희석"

이정재 호주 시드니대학교 교수
[이정재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이의진 이율립 양수연 기자 = "랭킹은 대학의 학문적 역량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가늠하는 '온도계'가 될 수는 있지만, 대학의 방향성과 철학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소속 이정재 교수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학들의 맹목적인 랭킹 집착을 비판하며 이같이 밝혔다.

간호학 전공인 이 교수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홍콩대에 재직하며 대학 랭킹 업무를 맡았던 전문가다. 글로벌 학술 교류를 이끌며 홍콩대의 국제화 수준을 끌어올렸다. 홍콩대의 2026년 QS 세계대학평가는 11위로 싱가포르국립대(9위)와 함께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30∼60위권에 머물고 있다.

◇ "후발 주자 아시아 대학들, 결과만 빨리 확보하려 해"

최근 국내 학계를 휩쓴 '학술 용병' 논란이 글로벌 랭킹 상승을 지상과제로 삼은 대학들의 씁쓸한 현주소를 조명하는 가운데, 이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랭킹을 대학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에 둘 것인가'를 시급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짚었다.

대학 랭킹 압박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대학들이 유독 성과 지표 올리기에 사활을 거는 데는 구조적인 맹점이 작용했다고 이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대학 랭킹의 연구 성과 지표가 영미권 학술지, 서구 학문 전통, 장기간 축적된 명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아시아 대학들은 구조적으로 '후발 주자'의 위치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QS나 THE 등 글로벌 랭킹 자체가 영미권 대학에 유리하게 설계돼있다는 비판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권에서 가장 랭킹이 높은 홍콩과 싱가포르 대학들도 특히 초기 단계에는 평가기관이 높은 비중을 두는 연구 성과 지표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며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다만 이 교수는 랭킹이 '도구'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오인되기 시작할 때 심각한 왜곡이 발생한다며, '학술 용병' 논란도 같은 선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제 공동연구, 외국인 교원 비율, 피인용 실적 등이 주요 평가 요소로 부상하자 대학들이 그 취지를 충분히 내재화하기 전 단기적 결과만 빠르게 확보하려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질적인 연구 협력 없이 외부 인력 영입으로 숫자만 끌어올려 '대학 국제화'라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진 '주객전도' 상황이란 것이다.

그는 "경쟁력 있는 국제 연구자를 (캠퍼스에) 머무르게 할 재정과 제도적 여력, 이들에게 자극을 받아 성장할 준비가 된 내부 연구 생태계가 부재하다면 외형적 국제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학교 강의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지식 생산·후학 양성·사회 기여 등 진정한 역량 집중해야"

과열된 경쟁에 염증을 느낀 일부 대학은 랭킹 '보이콧'을 선언하거나 대안 체계를 모색하고 있다. 2022년 설립돼 현재 700개 이상 연구기관이 참여 중인 유럽과학재단의 '연구평가개혁연합(CoARA)'이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이 교수는 "현재 평가 시스템이 학문의 다양성과 장기적 가치 창출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라면서도 "랭킹을 배제할 것인가 혹은 맹신할 것인가의 이분법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연구와 교육의 질은 본질적으로 시간 누적적이며 맥락 의존적"이라며 "단기 성과보다 지속성, 연구 환경, 학문 생태계 기여도를 보다 정교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랭킹 평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숫자에 목매는 사이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희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학의 진정한 역량은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 다음 세대 연구자를 길러내는 능력, 그리고 사회와 세계의 질문에 학문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그에 집중할 때 대학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랭킹으로 반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ee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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