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을 반대했던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이 미-이란 전쟁 종전 협상에 자신의 정치 미래를 걸고 임하게 됐다.
헝가리에서 극우 지도자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재선 운동을 지원하던 밴스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미-이란 전쟁 종전 협상의 미국 쪽 대표로 11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긴급 투입됐다. 이번 회담을 중재하는 파키스탄도 미국에 “밴스를 전면에 세우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트럼프가 이를 수용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협상팀이 대통령의 의중을 직접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트럼프가 밴스를 협상 대표로 내세웠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설명했다. 앞서 미국이 이란과 협상 중 두번이나 이란을 공격한 바 있어, 이번에는 전쟁에 반대한 ‘무게감 있는 인물’을 내세워 진정성을 부각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이란에 “이번에도 공습 전에 시간을 끄는 위장 협상”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라고 워싱턴포스트도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202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그에게는 자신의 반개입주의 성향과 트럼프의 전략적 계산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 위험과 기회의 순간이다. 반개입주의 성향 때문에 개전을 반대했던 전쟁의 결과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연루된 것이다.
지금도 스스로를 “외국 군사 개입에 대한 회의론자”라고 규정하는 밴스는 과거 공개적으로 “새로운 전쟁은 없다. 특히 이란과의 전쟁은 없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3월 미국의 예멘 후티 반군 공습을 논의하던 시그널 채팅에서도 밴스는 공습을 반대했다. 이란의 정권교체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회의적임을 표명해왔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와 한 회견에서는 “이란 정권교체 전쟁은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고, 지난해 10월22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한 통화에서 ‘폭격으로 이란 정권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을 ‘과장된 전망’이라고 반박했다. 밴스는 트럼프에게 자신의 반전 입장을 드러낼 때 “마치 달걀 껍질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고 그의 측근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다.
미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의 주민일수록 전쟁 반대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퀸시연구소의 벤 프리먼은 지적했다. 프리먼은 ‘힐빌리의 노래’에서 미국 서민들의 빈곤·물가 고통을 묘사한 밴스가 “가스와 생필품 가격이 치솟을 때 미국 서민이 느끼는 고통을 몸으로 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이 전쟁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미국 내 이해에 더 민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밴스는 회담에 임한 지 하루 만에 이란과의 합의에 실패했다며 12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날 오후 회담을 속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갑자기 취소됐다.
미국과 이란 모두 협상의 문을 닫지는 않아서 당장 밴스가 책임져야 할 일은 없어 보이지만, 협상의 향배에 따라 밴스가 그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특히, 트럼프 진영 내의 반개입주의와 매파 사이의 대결에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마가 진영에서 영향력이 강한 언론인 터커 칼슨과 메긴 켈리 등은 미-이란 전쟁을 강력히 비난하는 반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공화당의 전통적 개입주의 매파들은 이 전쟁을 통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도 지난해 6월 이란과의 12일 전쟁을 계기로 개입주의 매파들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 밴스는 이 사이에서 반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실무적으로는 트럼프의 전쟁·협상 전략을 집행해야 하는 ‘이중 구속’에 놓인 셈이다.
협상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전쟁은 원치 않았지만 전쟁 끝내기에 책임을 진’ 밴스는 미-이란 전쟁의 역사적 결산에서 빠지기 어려워졌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