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색빛 콘크리트가 도시의 표정을 지워버린 시대, 건축가 김재경은 뒤를 돌아보았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중·일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DNA를 추적해온 그가 신간 ‘ 『TIMBERCRAFT: Lost Tectonics from East Asia’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계적인 건축 전문 출판사 Nai010과 협업한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유물이 아니라, 미래 건축을 향한 가장 정교한 설계도에 가깝다. 13일까지 토포하우스에서 출핀기념 전시회도 du연다. 전시 현장에서 그를 만나 ‘잃어버린 결구(Tectonics)’에 대해 물었다.
-이번 저서 ‘TIMBERCRAFT’는 단순한 아카이브를 넘어선 ‘디자인 연구서’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집필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 근대 이후 동아시아 건축은 스스로의 진화를 멈췄습니다. 전통은 그저 콘크리트 위에 덧씌워진 ‘박제된 상징’으로만 소비되어 왔죠. 저는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목조 건축의 구조적 논리를 잊었는가?’ 이 책은 1,400여 년에 걸친 9개의 사례 연구를 통해, 나무와 나무가 맞물려 중력을 견뎌내던 그 지독한 ‘구조적 언어’를 현대의 시점에서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입니다.”

-책에서 ‘콘크리트의 보편성’이 지역의 다양성을 파괴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의 비판과도 궤를 같이하는데요.
“ 맞습니다. 콘크리트는 시공이 쉽고 형태가 자유롭지만, 그 보편성 때문에 어느 도시든 똑같이 닮아가는 ‘천성일면(千城一面)’의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반면 나무는 정직합니다. 재료의 성질을 거스르면 구조가 성립되지 않죠. 동아시아 목조 건축의 정수인 ‘공포’와 ‘결구’ 체계는 각 지역의 기후와 문화에 맞춰 수천 년간 진화해온 결과물입니다. 그 고유한 논리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건축적 다양성을 되찾는 길이라 믿습니다.

- 10년간 직접 작업한 삽화와 도판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네덜란드의 ‘Studio Joost Grootens’가 디자인을 맡아 화제가 되었죠.
"전통 건축의 구조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수학적·물리적 논리를 품고 있습니다. 이를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세밀한 삽화 작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렘 콜하스의 저서를 디자인한 조스트 그루텐스(Joost Grootens)와의 협업은 이 복잡한 데이터들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덕분에 단순한 자료집을 넘어 하나의 ‘시각적 아카이브’로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하셨습니다. 과거의 기술이 어떻게 미래 건축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은 집성 목재(Glulam)나 CLT 같은 공학 목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디지털 설계와 제작 기술이 더해지면, 과거의 장인들이 손으로 구현했던 정교한 결구 방식을 현대 건축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통의 논리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법고창신입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업물들은 그 가능성이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공간 미학’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십니까?
"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건축들 사이에서, 재료의 저항을 이해하고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목조 건축의 ‘조용한 지혜’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건축가나 실무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공간의 근원을 고민하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이 하나의 다정한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MIT 대학원 건축학 석사,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김재경의 작업은 멈춰버린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끌어올려 미래로 밀어내는 작업이다. 그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나무의 결구들은 말한다. 건축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는 상자가 아니라, 대지와 하늘 사이에서 인간이 자연과 맺는 가장 우아한 약속이어야 한다고. ‘TIMBERCRAFT’는 그 약속을 잊지 않겠다는 한 건축가의 치열한 선언문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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