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보완 약속했지만 또 참사…스토킹 보호 체계 도마에

"현장 위험성 평가 기준 모호…경찰 대응만으로 한계"

"부처 간 칸막이·기계적 대응 개선돼야"

경찰 신변보호 (PG)
[장현경, 이태호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심민규 기자 = 지난해 의정부시와 울산 등지에서 여성들이 잇달아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다 결국 흉기로 공격을 당하는 사건으로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다.

사건이 터지자 관계 당국들은 부랴부랴 제도 보완에 나서다. 하지만 최근 남양주에서 경찰의 보호조치 대상인 여성이 전자발찌까지 찬 스토킹 남성에게 피살되며 작년에 제기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현장에서 담당자들이 겪는 제도적 한계와 전문가, 피해자들이 원하는 개선 방향 등을 짚어봤다.

'고인을 추모하며'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1주기를 맞은 14일 저녁 서울 신당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2023.9.14 saba@yna.co.kr

◇"구속 등 강력 조치 안해" 지적…현장서 판단 쉽지 않고 법원 문턱 높아

이번 남양주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큰 지점은 범행 전 신병확보 지연 등 경찰의 미온적 대응이다.

피의자 A씨는 과거 저지른 강간치상죄로 전자발찌를 찬 위험인물이었다. 피해 여성 B씨를 폭행하고 차량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는 스토킹까지 한 것으로 신고됐지만,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인 조치 신청을 한 달여간이나 미뤘다.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면 경보가 울리는 잠정조치 3의2호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가해자가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로 재범 위험성이 높았음에도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하는 등의 경찰 대응이 부족했다"며 인정하고 사과했다.

현장에서 스토킹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담당하는 경찰관들은 구속영장 신청, 잠정조치 4호 신청 등 적극적 조치에 대해서 판단해 어렵고, 조치를 승인할 사법 당국의 문턱도 높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형사와 여성청소년 업무를 오래 담당한 한 경찰관은 "구속영장 등 가장 강한 조치를 언제 어떤 경우에 취해야 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결국 수사관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당장 온순해 보이던 가해자가 다음날 살인자로 돌변할지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현장에서 직접 피해자와 가해자를 봤을 때 직감 상 위험해 보이더라도,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없으면 구속영장이나 4호 조치가 기각될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 느끼는 위험성이 검찰이나 법원이 서류에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기북부지역에서 2024년 경찰이 신청한 잠정조치 3의 2호의 인용률은 37.5%, 2025년은 27.3%였다. 구인이 가능한 잠정조치 4호 역시 2024년 인용률 49.5%, 2025년 27.1%에 불과했다.

지난해 의정부 스토킹 사건 역시 경찰이 잠정조치(접근·연락 금지)를 신청했으나 검찰은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학대 예방 경찰관(APO) 한명이 담당하는 스토킹 사건이 보통 수십건에 달해 각 사건을 세세하게 살피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스토킹, 교제폭력’ 관계부처 및 전문가 대책회의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여성가족부 원민경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 교제폭력 관련 관계부처 및 전문가 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5.9.24 hama@yna.co.kr

◇경찰 대응만으로 한계…부처 간 칸막이 없애야

이번 사건에서 경찰과 법무부는 각자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정작 핵심 위험 정보는 공유되지 않아 피해자 보호 공백을 낳았다.

경찰이 피의자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라는 점과 과거 전력 등을 파악했지만, 법무부는 스토킹 신고 이력이나 잠정조치 관련 상황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가 관리하던 전자발찌는 이 사건 관련이 아닌 과거 다른 성범죄 사건에 따라 부착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보호관찰 당국 입장에서는 A씨의 위치 정보가 확인되더라도 그것이 피해자를 상대로 한 범행 위험과 연결된 신호인지 판단을 하지 못했다.

실제 A씨는 범행 이틀 전부터 피해자 직장 주변을 오간 것으로 조사됐지만, 법무부는 그 동선이 피해자 접근 시도와 관련된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피의자의 전자발찌 훼손 전까지 별다른 제지나 개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경찰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어 사건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경찰 역시 전자발찌 부착 사유가 이번 스토킹 사건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어서 별도로 공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전자발찌가 실시간 위치 추적 장치로는 기능했지만,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전 경보 장치로는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뒤늦게 경찰은 법무부와의 정보 공유 확대, 전자발찌와 스마트워치 연동 등 제도 보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경찰의 대응만으로 해결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검찰·법원 등 유관 기관이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 범죄 대응은 경찰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경찰과 법무부가 협업해 장기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양주 가정폭력ㆍ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남양주 가정폭력ㆍ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6.3.17 pdj6635@yna.co.kr

◇ 기계적인 '문안 인사' 도움 안 돼…위험성 평가 역량 높여야

피해자 유가족, 시민 인권 단체들은 당국의 조치가 기계적이고 피해자 친화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 등 338개 시민단체는 지난 17일 청와대 분수 앞에서 범정부 종합대책 추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스마트워치가 있어도 살해가 이뤄지는 건 1분 30초에 불과하고 경찰 출동은 최소 3분이 걸린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속한 분리, 가해자 모니터링, 가정폭력법 전면 개정 등을 촉구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스토킹 피해자들 모니터링은 피해자 위주인데 매일 피해자에게 '잘있냐'고 물어본들 범죄 예방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가해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범죄 징후 파악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범죄 위험성 평가를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현장에서 스토킹 가해자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일이 물론 까다롭겠지만, 어렵다고 손 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라며 "현장 판단 능력 향상을 위해 기존 사례들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등 담당자들의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hch793@yna.co.kr, wildboa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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