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코스 공략하던 '대표 땅꾼' 고영표, ABS 도입 후 패턴 변화
'인간 심판' WBC서 낮은 코스 다시 노렸으나 제구 흔들려 아쉬운 결과

(도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2차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선발 투수 고영표가 역투하고 있다. 2026.3.7 yatoy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 야구대표팀 선발 투수 고영표(kt wiz)는 한국 최고의 '땅볼 유도형 투수'로 꼽혀왔다.
낙차 큰 체인지업을 앞세워 KBO리그를 평정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고, 2021시즌과 2023시즌엔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다.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추신수(현 SSG 랜더스 구단주 보좌역)도 인정한 '마구'였다.
2021년 KBO리그 SSG에 합류한 추신수는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타석 앞에서 공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극찬했다.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국제대회에서도 통했다.
그는 2020 도쿄 올림픽 일본과 미국전에 선발 등판해 체인지업을 앞세워 호투를 펼쳤다.

(도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2차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선발 투수 고영표가 역투하고 있다. 2026.3.7 yatoya@yna.co.kr
그러나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2024년을 기점으로 위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KBO리그에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이 도입되면서다.
ABS에서는 홈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 면 두 곳에서 공이 모두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높게 날아온 공이 떨어지면서 두 면 윗부분을 '살짝' 걸치는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
이에 따라 높은 코스를 잘 공략하는 투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고, 고영표 역시 투구 패턴을 바꿨다.
그는 몸의 무게 중심을 낮춰서 공에 힘을 실어 던지는 훈련에 집중했다. 공의 상승 각도를 키워 높은 코스를 노리는 방식이었다.
2024시즌 평균자책점 4.95에 그쳤던 고영표는 교정 과정을 거쳐 2025시즌 11승 8패, 평균자책점 3.30으로 반등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둔 고영표는 다시 한번 변화를 줘야 했다.
WBC에서는 ABS가 아닌 인간 심판이 볼 판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고영표는 다시 예전처럼 스트라이크존 낮은 코스를 공략해야 했다.
일찌감치 1라운드 한일전 선발 투수로 낙점된 고영표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회복하기 위해 밤낮 없이 준비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고영표는 낮은 코스를 공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몸에 익힌 투구 방식을 하루아침에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도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2차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2회말 2사 일본 겐다의 땅볼을 잡으려던 한국 고영표가 잠시 주저앉고 있다. 2026.3.7 yatoya@yna.co.kr
고영표는 7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WBC C조 조별리그 2차전 한일전에 선발 투수로 나와 3-0으로 앞선 1회말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한일전이라는 압박감과 낮은 공을 던져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공은 뜻대로 제구되지 않았다.
선두 타자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볼넷을 내줬고, 1사 1루에서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에게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월 투런 홈런을 허용했다.
체인지업이 높게 떴고, 스즈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홈런을 허용한 고영표는 긴장을 풀어낸 듯했다.
그는 이후 스트라이크 존 낮은 코스 구석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바깥쪽 코너워크에 집중해 2루 땅볼을 유도했고, 오카모토 가즈마(토론토 블루제이스) 역시 느린 공으로 투수 앞 땅볼 처리했다.
2회는 완벽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시카고 화이트삭스), 마키 슈고(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연속 삼진으로 잡았고, 겐다 소스케(세이부 라이언스)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다.
세 타자를 상대로 던진 결정구는 모두 낮은 코스의 변화구였다.
그러나 3회 들어 체인지업이 다시 뜨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사카모토 세이시로(한신 타이거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지만, 후속 타자 오타니에게 몸쪽 높은 공을 던졌다가 우월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이어 곤도 겐스케(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낮은 공을 잘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으나 스즈키에게 가운데 몰린 변화구를 던졌다가 좌월 역전 솔로 홈런을 헌납하고 강판했다.
고영표는 2⅔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잡았고 안타 3개, 볼넷 1개를 줘 4실점 했다. 허용한 안타 3개는 모두 홈런이었다.
그리고 그 홈런을 맞은 공은 모두 높은 코스로 들어간 변화구였다.
cy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