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요약 및 정리
하루아침에 무너진 어린 시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 7월 17일 한 편의 글이 올라왔어요
제목은 나도 엄마 아빠가 있었다였어요
이 짧은 문장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쳤다는 반응이 이어졌어요
글을 쓴 사람은 지금 포항에 있는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였어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흔한 취업 성공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인생이 담겨 있었어요
A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어요
가족 셋이 함께 차를 타고 마트로 향하던 평범한 하루였어요
그 길 위에서 커다란 트레일러가 가족이 타고 있던 차를 그대로 덮쳤어요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고 A씨도 크게 다쳐 3일 동안 의식을 잃었어요
겨우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하기도 힘든 무게였을 거예요
친척도 외면한 아이 결국 보육시설로
부모님을 잃은 뒤 A씨를 받아준 친척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결국 A씨는 보육시설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마저도 순탄하지 않아서 시설을 두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어요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며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어요
어린 나이에 겪기에는 너무 가혹한 불안정함이었어요
한곳에 정착해 안정을 느낄 틈도 없이 계속 옮겨 다녀야 했던 그 시절이 지금의 A씨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몰라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부모의 품이 A씨에게는 평생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런 결핍 속에서도 A씨는 자기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가야 했어요
학창시절 왕따와 놀림 속에서 홀로 버틴 시간들
시설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학교생활은 더 큰 상처였어요
엄마 아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어요
남들이 입던 헌 옷을 기증받아 입고 다니는 게 소문나면서 거지라는 놀림까지 받았어요
그렇게 곁에 마음을 나눌 친구 한 명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어요
방학이 되면 굶지 말라고 학교에서 두유와 라면을 박스째 나눠줬어요
그 무거운 박스를 들고 학교와 시설 사이를 3번씩 왕복해야 했어요
A씨는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털어놨어요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등하굣길이 A씨에게는 매번 버거운 노동이었던 셈이에요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폭력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A씨는 시설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숙사가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일부 불량한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반복됐어요
결국 A씨는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안전하게 기댈 곳 하나 없이 또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했던 순간이었어요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A씨의 삶은 더 거친 현실로 내던져졌어요
물류창고부터 노가다까지 안 해본 일이 없던 시절
학교를 나온 뒤 A씨는 물류창고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시작했어요
건설 현장에서 몸을 쓰는 노가다도 했어요
밤에는 수산시장에서 얼음을 배달하고 노래방 카운터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어요
잠잘 곳이 없던 밤에는 시골 마을 노인정 옥상에 있던 파란색 물탱크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지붕 없는 하늘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번 돈을 조금씩 모아 결국 모텔에서 달방을 얻어 지낼 수 있게 됐어요
달방 구석에서 시작된 늦은 공부
몸이 조금 편안해지자 A씨 마음속에서 새로운 바람이 생겼어요
바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낮에는 여전히 현장에서 몸을 써서 일했어요
밤이 되면 좁은 달방 구석에 앉아 하루 2시간씩이라도 책을 폈어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놓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결국 A씨의 미래를 바꿔놓았어요
그렇게 꾸준히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결실을 맺었어요
용접과 전기 가스 등 여러 기능 자격증까지 하나씩 손에 넣었어요
드디어 찾아온 대기업 합격 그리고 눈물의 면접
자격증을 갖춘 A씨는 마침내 지금 다니고 있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어요
면접 자리에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A씨는 한 번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고 해요
그리고 운이 좋게 뽑힌 것 같다고 겸손하게 돌아봤어요
가장 아픈 순간을 묻는 질문 앞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지나온 세월을 마주한 셈이에요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고 A씨는 전했어요
부모님 생신에 홀로 준비한 작은 케이크
A씨는 부모님 생신이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놨다고 했어요
다음 날 그 케이크에 촛불을 켤 계획이라고 밝혔어요
잘 컸다고 잘 살고 있다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라고 마음속으로 전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부모님께 건네고 싶다고 했어요
연휴가 다가와도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남겼어요
자신의 아픔보다 남의 행복을 먼저 빌어주는 그 마음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어요
1200개 넘는 응원 댓글 쏟아진 훈훈한 반응
이 글에는 20일 오전 기준으로 1200개가 넘는 응원 댓글이 달렸어요
힘든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한 A씨에게 존경을 표하는 댓글이 이어졌어요
아기 때의 너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는 댓글도 있었어요
강하고 멋진 사람이라며 술 한잔 사주고 싶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왔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바람도 쏟아졌어요
많은 응원에 A씨도 지난 19일 댓글로 감사 인사를 전했어요
23년 동안 혼자 살아오면서 듣지 못했던 따뜻한 말들에 울고 웃었다고 밝혔어요
아직 어둠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힘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