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친구라는 지위를 이용해 16살 청소년을 잔혹하게 유인하고 살해한 '강진 여고생 사건'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이 저려오는 비극입니다. "내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큰일이 나면 신고해 달라"며 친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야 했던 피해자의 공포와 무력감을 생각하면 감히 그 고통을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사건에서 정작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지점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수사와 처벌이라는 최소한의 법적 심판마저 거부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은 결코 반성이나 속죄의 몸짓이 아닙니다.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워 도망친 가장 비겁한 회피이자, 피해자와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마지막 가해행위일 뿐입니다. 범인이 사망함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허망하게 종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족들은 딸이 왜 그런 참혹한 일을 당해야 했는지,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상태였는지 물어볼 기회조차 영영 잃어버렸습니다. 법적인 단죄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아야 했을 유족들의 권리는 가해자의 무책임한 죽음 뒤로 통째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가해자는 처벌을 면했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형벌을 살게 된 셈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과제를 던져줍니다. 가해자가 사망하더라도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고 기록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공소권이 없어지더라도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엄정한 조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평소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경계심을 풀 수밖에 없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인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떠난 이 양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가해자의 비겁한 회피로 사법 정의가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