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폭동’ 현장을 담은 카메라: 정윤석 감독 유죄 판결이 던진 ‘기록의 자유’와 ‘법치’의 경계
2026년 7월, 언론과 영화계의 눈귀가 헌법재판소로 쏠렸습니다. 과거 2020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가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정윤석 씨가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해 최근 사전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예술·언론의 자유를 위해 위험한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려 했던 예술가의 행위를 법원이 법질서 위반으로 처벌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역사의 기록자에게 어디까지 법적 예외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전말부터 정 감독이 유죄 판결을 받은 구체적인 이유, 그리고 이 사안이 주는 씁쓸함과 느낀 점을 종합적으로 짚어보려고 합니다
사건은 2020년 8월, 코로나19 재유행 위기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는 재개발 조합과의 갈등으로 명도집행(강제 집행)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강제 집행 과정에서 교인 및 대치자들과 집행관들 사이의 극심한 충돌이 연일 이어졌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명도집행을 진행하는 집행관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법 집행을 완수하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랑제일교회 교인들과 일부 극우 성향 유튜버, 지지자들은 서울서부지법 앞으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8월, 흥분한 시위대 수십 명이 법원 청사 정문을 부수거나 담장을 넘어 무단으로 난입했습니다. 법원 내부는 고성과 욕설, 집기 파손으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법원 판사와 직원들이 위협을 느끼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유례없는 ‘법원 난입·폭동 사태’로 번졌습니다.
영화 〈논픽션 다큐멘터리〉 등으로 이름을 알린 정윤석 감독은 이 미친듯한 역사적 폭력과 충돌의 현장을 예술적·시각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시위대와 함께 서부지법 청사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정 감독은 시위나 폭력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고 오직 ‘촬영 및 기록’만을 수행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시위대에 가담한 이들뿐만 아니라 현장을 촬영한 정윤석 감독에게도 '방실침입 및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대법원까지 간 길고 긴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이 정 감독에게 유죄(벌금형 등)를 확정한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원은 정 감독이 시위대에 동조해 기물을 부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무단으로 법원 청사에 들어간 행위 자체가 이미 형법상 건조물침입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보았습니다. 정 감독이 기자증을 소지한 정식 취재 기자가 아닌 점, 법원의 출입 허가를 받지 않은 점 등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법원 입장에서 가장 우려했던 대목입니다. 만약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라는 주관적 목적만으로 불법 난입 현장의 입장을 무죄로 풀어준다면, 향후 유사한 폭동이나 불법 점거 현장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나도 촬영하러 왔다", "1인 미디어 기록자다"라고 주장하며 법망을 피할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법원이라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의 질서 유지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판결이었습니다.
법원이 세운 '법질서 유지와 악용 방지'라는 기준도 머리로는 이해가 갑니다. 법이 예외를 남발하기 시작하면 법치주의의 제방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이자 기록자인 정윤석 감독이 법정에서 범죄자로 낙인찍힌 현실은 가슴 한구석에 씁쓸하고 깊은 안타까움을 남깁니다.
역사적으로 권력의 폭주나 광기 어린 집단의 폭력을 후대에 증언해 온 것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댄 기록자들의 용기였습니다. 정 감독이 그 아수라장에 들어간 것은 폭동에 동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이성과 광기가 어디까지 치달았는지를 렌즈에 담아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이나 벌금형의 범죄자가 되는 사회라면, 앞으로 어떤 예술가와 다큐멘터리 감독이 위험하고 가치 있는 역사적 현장에 선뜻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공익적 목적의 취재나 예술적 기록 행위조차 기계적인 법 조문으로 옭아맨다면, 우리는 후대에 남겨야 할 귀중한 사료와 시각적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정윤석 감독의 헌법소원(재판소원)은 단순히 개인의 무죄를 다투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법질서의 수호’라는 공익과 ‘표현·예술·기록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부딪히는 정점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안을 통해, 악용의 여지는 엄격히 막되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진정성과 공익적 가치를 혜안 있게 포용할 수 있는 명확하고 발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