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민주와 보수라는 해묵은 진영 논리로 접근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를 따지는 엄중한 시스템의 붕괴 문제다.
주권을 행사하러 간 국민이 투표용지가 없어서 발을 동률 굴러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사태는 그 어떤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국가적인 수치이자 참사다. 정치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이고 숭고한 권리인 참정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영을 나누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여야가 모두 한목소리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와 특검은 물론이고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까지 주장하며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다. 이러한 양측의 태도 변화와 입장 차이를 가만히 뜯어보면 결국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이번 사안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과 표 계산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여야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아니다. 내가 행사하려 했던 소중한 한 표가 왜 인쇄된 종이 쪼가리조차 부족하다는 황당한 이유로 가로막혀야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인 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당장 오늘이라도 국정조사를 발의하고 가장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라는 사각지대 뒤에 숨어 감시와 견제를 피해왔다면 법을 고치고 제도를 쇄신해서라도 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가치가 흔들렸다.
만약 내가 이번 지방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았는데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당사자라면 과연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선관위의 행정 착오나 실수라는 변명을 듣고 참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를 상대로 참정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나 해당 선거구의 선거 무효 소송을 개인이 직접 제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로가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소중한 표가 사장되지 않도록 투표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감시하고 항의할 수 있는 제도적 권리나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선관위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외부 기관이 선거 준비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독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과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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