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역사의식 부재

 

하루 만에 뒤집힌 '사실무근' 배우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에 결국...

TJB 대전·세종·충남뉴스

https://youtu.be/r4NXAOYr6Ds?si=mEo3NG2Jj8-EzOib

 

 

안상호에 대한 기록들(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search/searchTotalResult.do?totalWord=%EC%95%88%EC%83%81%ED%98%B8&wordImages=%EC%95%88%EC%83%81%ED%98%B8

 

하영,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역사의식 부재

친일파, 안상호는 누구인가

안상호(安商浩, 1872~1927)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사로, 본관은 순흥이며 호는 해관이다.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여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귀국 후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에서 강의하고 순종의 전의를 지냈으며, 종로에 개인진료소를 열어 의료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확인되었으며,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가정에서 일본식 생활과 교육 방식을 고수한다고 밝혀 일제의 '내선융화' 기조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1919년 고종 승하 당시 전의로서 진료에 참여했다가 독살설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와 같은 행적이 재조명되었다.

 

 

하영,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역사의식 부재

안상호가 소속된 대정친목회

대정친목회(大正親睦會, 이후 대정실업친목회로 개편)는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6년 11월에 서울에서 결성된 대표적인 친일 어용 단체입니다. 단체 명칭은 당시 일본 천황 요시히토의 연호인 '다이쇼(大正)'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763

 

대정친목회의 성격과 주요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조직의 성격


무단 통치기 유일의 합법 단체: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직후 모든 결사와 언론·집회의 자유를 엄격히 금지하던 혹독한 '무단 통치기'에, 조선총독부의 특수 승인을 받아 활동했던 사실상 유일한 합법적 조선인 단체였습니다.

거물급 친일파 총망라: 이완용(을사오적), 송병준, 민영기, 민영휘 등 당대 일제에 적극 부학했던 친일 귀족, 대지주, 전직 관료 및 친일 지식인들이 고문과 임원으로 대거 참여했습니다.

 

주요 활동 및 '만행'의 성격


표면적으로는 회원 간의 친목, 사교, 정신 수양 등을 내걸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최전선에서 대변하고 조선 민중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식민 지배 순응 및 사상 통제: 조선 민중이 일제의 무단 통치 질서에 반발하지 않고 고스란히 순응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국가 경축일(일본 황실 기념일 등) 준수, 조선총독부 법령의 선전, 납세 의무 이행 등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일선융화(日鮮融和)' 및 실력양성론 왜곡: 조선인의 독립 의식을 꺾고,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논리를 주입하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 교육 보급이나 산업 발달을 명목으로 내세우며, 독립운동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 내에 예속시키는 선전 활동을 펼쳤습니다.

 

언론 조작과 매체 활용: 초기 식민지 여론을 조작하고 총독부의 시책을 전파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창간하기도 하는 등 친일 세력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결국 대정친목회는 폭력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단체라기보다, 일제의 통치 이념을 정당화하고 조선인 상류층을 포섭하여 항일 의식을 무력화하던 핵심적인 어용·사상 통제 단체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영,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역사의식 부재

'일선동체의 가정, 안상호 씨 내외와 그자녀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

"오남매의 자녀들은 집에서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자녀들을)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조선 사람과는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

 

출처

https://www.mk.co.kr/news/entertain/12122981 

 

안상호의 주요 생애 및 기록


한국인 최초 일본 의사 자격 취득:

부친인 안건영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 관립일어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1902년 도쿄지케이카이의과대학(당시 동경자혜의원의학교)을 졸업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의료 활동 및 고종 진료:

1904년 귀국 후 순종의 전의(왕실 전담 의사)로 활동했으며,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 등에서 서양의학을 강의했습니다. 종로에 개인 진료소를 개원했고, 한국인 의사들로 구성된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909년 이완용 저격 사건(이재명 의사 의거) 당시 이완용을 치료한 의사 중 한 명으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1919년 1월 고종 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 당시, 전의로서 일본인 의사와 함께 고종을 진료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이후 일각에서 독살설과 연관된 무고를 받기도 했으나, 명확한 근거는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친일 단체 가담 기록 ('대정친목회'):

1916년 11월 결성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이 국사편찬위원회 자료(국사관 논총 등) 등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내선일체' 및 일제 동화 강조 인터뷰: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 "조선 사람과는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다" 등의 발언을 하여 일제가 자발적인 '일선동화(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적극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배우자 및 자식(자녀) 관련 기록


안상호는 일본인 배우자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도 기록을 남겼습니다.

배우자: 카와구치 이소코 (일본인)

자녀 구성 (오남매 등 총 8남매 기록):

장녀: 안견자 (安絹子)

장남: 안정호 (安正浩)

차남: 안강호 (安康浩)

3남: 안덕호 (安德浩)

차녀: 안순자 (安純子)

4남: 안부호 (安富浩, 1922년생) — 임상병리과 의사로 활동했으며, 배우 하영의 조부(또는 집안 항렬 상 조부·부친 축의 인물)로 이어지는 라인입니다.

3녀: 안능자 (安綾子)

 

자녀 양육 및 교육 관련 기록


1916년과 1918년 《매일신보》 기사 등에 따르면, 안상호는 자녀들을 집에서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게 하고 조선말은 전혀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완벽한 일본인 가정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되었습니다. 이는 일제의 황민화 정책 및 일선동화 정책에 부합하는 행태로 활용되었습니다.

 

안상호의 손자이자 하영의 조부인 고(故) 안부호 교수의 국립소록도병원 근무 이력

소록도 병원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및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조부 안부호 교수의 소록도 근무 기록

근무 시기: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안부호 교수는 1949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국립소록도병원에 재직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연구했습니다.

 

가족력 연계: 이 시기 소록도에서 근무하던 중 아들(하영의 부친인 안병문 원장)이 소록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안부호 교수는 전남대학교 및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소록도 병원의 인권침해 역사와 '인체실험' 논란

안부호 교수가 재직했던 시기(1940년대 말~1950년대)를 포함하여, 과거 소록도병원에서는 일제강점기 및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걸쳐 한센인들을 상대로 한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습니다.

 

강제 정관수술(단종) 및 낙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등에 따르면, 소록도 병원은 환자들에게 강제로 정관수술과 낙태를 시행하고, 이를 조건으로 제한적인 동거를 허용하는 등의 비인권적 통제 정책을 폈습니다.

 

임상적 시술 및 실험: 환자의 몸에 고통을 주는 시술이나 검사 방식, 유족 동의 없는 시신 해부 등 인권 침해적 의료 행위들이 이루어졌다는 기록과 증언들이 존재합니다.

 

조부 개인의 가담 여부


소록도 병원 역사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인권유린과 비극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안부호 교수가 구체적으로 그러한 인권침해나 인체실험 행위에 주도적으로 가담했거나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대중의 비판은 주로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더불어, 과거 어두운 인권 침해 역사가 존재했던 소록도에 의사 집안의 이력이 연결되어 조명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사안입니다.

 

소록도 관련영상

https://youtu.be/GpWwSXyLtBs?si=-eyV2Sy7e9AumsEq

하영,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역사의식 부재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밝힌 증조부의 친일 행적 의혹에서 비롯

주요 원인과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송에서의 의료 가업 언급


하영은 최근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증조부가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뒤 국내에 양의원을 개원하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는 의료 가업 스토리를 공개했습니다.

 

증조부의 친일 단체 활동 의혹 제기


방송 이후 누리꾼들은 해당 인물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 안상호라고 특정했습니다. 이후 그가 일제강점기 당시 대표적인 친일 단체로 꼽히는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등을 통해 일제에 동화되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는 기록들이 발굴되며 친일 논란이 일었습니다.

 

소속사의 입장 번복과 사과


논란 초기 소속사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으나, 기록 등이 실제로 확인되면서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하여 혼란을 드린 점을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인지나 검증 없이 방송에서 조상의 이력을 가볍게 미화했다는 시선과 함께 역사의식 부재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상의 과오를 후손 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과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배우 하영의 가족사 발언, 그 뒤에 숨겨진 역사의 기록

최근 배우 하영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한양 최초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열고 고종 황제를 진료했던 분이라고 밝히면서 큰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가족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어요. 방송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하영 씨의 증조부가 '안상호' 씨가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고, 그 과정에서 그분이 1916년 조직된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죠.

'대정친목회'는 당시 이완용을 비롯해 3·1운동에 반대했던 대지주나 친일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였다고 하니, 대중들이 느끼는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 소속사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불과 하루 만에 기록을 확인했다며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예인이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것이 과거의 역사와 맞닿아 있을 때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하는지를 이번 일이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해요.

 

역사는 결코 숨길 수 없다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과거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정보의 시대잖아요. 연예인들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집안의 명예나 가업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이면에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내뱉는 말 한마디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죠.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공인이라면, 자신의 뿌리에 대해 말하기 전 스스로 얼마나 더 깊이 공부하고 검증했어야 하죠.

 

앞으로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제 주변의 일을 언급할 때,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려 노력해야겠어요. 또, '기록의 힘'이 정말 무섭다는 걸 느꼈으니, 저 역시 제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록을 남기며 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누군가 나를 이야기할 때, 부끄러운 과거의 기록보다는 떳떳한 행적들이 남을 수 있도록 매사 언행에 더 신중함을 기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이번 사건은 단순 연예인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대하고 또 기억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친일파, 매국노를 벌하지 못했나

 

미 군정의 치안 유지와 행정 편의주의


해방 직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 군정은 치안 유지와 사회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시절 행정, 경찰, 사법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실무를 잘 아는 친일 관료와 경찰들이 대거 유임되었습니다.

 

반공주의와 냉전 체제의 대두


남북 간 이념 대립이 극심해지고 냉전 체제가 고착화되면서, 미 군정과 남한의 신생 정권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설 정치적·군사적 동맹군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공 성향을 가진 구 친일·우익 세력이 정치적 방패막이로 활용되면서 청산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반민특위의 좌절과 정치적 탄압


제헌 국회 주도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어 친일파 처벌을 시도했으나, 이승만 정권과 경찰 세력의 비협조 및 방해를 받았습니다. 특히 '국회 프란치 사건' 등으로 반민특위가 무력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친일 청산 작업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친일 세력의 기득권 유지와 경제적 생존


친일파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축적한 막대한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해방 이후 정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반공주의 노선을 타며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연좌제에 대한 시각

친일파가 일제강점기 동안 축적하고 대물림한 경제적 부와 특권이 후손들의 삶과 기회에 실질적인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좌제' 논리를 넘어 부당하게 취득한 기득권과 부의 대물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부와 기회의 세습


친일 행위를 통해 획득한 토지, 재산, 그리고 사회경제적 자본은 후손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으며, 이는 공정한 경쟁의 관점에서 구조적 불평등을 야기했다는 지적입니다.

 

법적 한계와 도덕적 책임의 괴리


현행 법체계상 후손 개인을 직접 처벌하거나 과거의 부를 완벽하게 환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역사적 특혜로 얻은 부가 여전히 사회적 자원으로 기능하는 현실에 대해 대중이 도덕적 책임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입니다.

 

공인의 태도와 민감성


친일 자산이나 이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반 위에서 자란 인물이 방송 등 공적 매체에서 자신의 가문을 영웅화하거나 미화하는 언행을 보일 때, 대중이 이에 대해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역사적 정의의 관점에서 강한 반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벌을 줄수없나?

법적으로 과거의 친일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형사 처벌이나 소급적인 재산 몰수를 완벽하게 집행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형벌 불소급의 원칙과 재산권 보장 등 법적 안정성을 기본 골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수십 년 전에 종결된 사안에 대해 개별 후손의 재산을 임의로 소급해 몰수하거나 형사적 처벌을 내리는 것은 현행법 체계상 법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다만, 법적 처벌 외에 사회적·제도적으로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일재산 국가귀속법의 한계 보완 및 지속


참여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친일파가 남긴 재산 일부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향후 누락된 친일 재산이나 부당 이익이 추가로 발견될 경우, 법적 테두리 안에서 환수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감시와 역사적 평가


공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자신의 가족사나 과거를 공적으로 미화하거나 왜곡할 때, 대중과 언론이 이를 엄격하게 검증하고 비판하는 시민 사회의 감시 기능이 중요합니다.

 

철저한 기록과 공론화


과오를 은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가 올바른 역사적 교훈을 얻도록 하는 교육과 공론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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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해뭐해#GhtL
    공인의 언행과 역사의식은 늘 중요하죠.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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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222
    친일 증조부를 자랑삼아 얘기하더니
    결국 난리날만했던거 같습니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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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숙#aMXi
    방송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아요. 역사 의식이 부재한 것 같아 좀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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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이즈#PbyX
    하영 친일파 논란이 요새 최고의 이슈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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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수#nlZF
    방송에서 말하기 전에 조금만 더 신중하게 확인해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공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