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갑론을박이 있군요
https://supple.kr/news/cmmx7dw5s0089tujkdu3e9t7f
AI로 부활한 발 킬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기술은 죽음마저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발 킬머가 AI의 몸을 빌려 스크린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경이롭지만, 한편으로는 서늘하다.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대신, 그의 데이터를 학습시킨 '디지털 트윈'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 것일까?
어디까지가 예우인가?
발 킬머의 사례에서 가장 강력한 명분은 '유족의 동의'와 '고인의 생전 의지'다. 그는 살아생전 이 작품을 원했고, 기술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긍정했다. 이 지점에서 AI는 고인이 못다 이룬 꿈을 완수해 주는 '디지털 수의'가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인의 가치관과 상관없이 수익을 위해 재현되거나, 생전에 기피했던 이미지로 소비된다면 그것은 영혼 없는 '디지털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기록은 연기를 대체할 수 있는가?
디자이너의 눈으로 볼 때, AI가 재현한 주름과 빛 번짐은 완벽할지 모른다. 그러나 연기는 '찰나의 선택'이다. 배우가 그날의 공기, 상대 배우와의 호흡 속에서 빚어내는 즉흥적인 감정은 데이터의 통계적 예측값이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단 한 장면도 직접 촬영하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수행성'이라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결국 남는 것은 '존엄'의 문제
법은 서서히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다. 유족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상업적 이용을 제한하는 식이다. 그러나 법보다 앞서야 할 것은 사회적 합의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인사를 기술로 덧칠해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추모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무엇이든 해서는 안 된다. 발 킬머의 부활이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후 인격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