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둘러싼 노동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이번에 불거진 초기업노조 지도부의 고액 직책 수당 논란과 내부 갈등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지녀야 할 본연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씁쓸함이었습니다. 대기업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며 총파업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기 직전에, 정작 내부에서 지도부의 돈 문제와 불투명한 운영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참 역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익을 대변하고 개인이 사측을 상대로 대항할 수 없을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매달 피땀 흘려 번 돈에서 떼어내는 조합비는 그 울타리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전체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하는 공적인 자금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 그 울타리를 지켜야 할 파수꾼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가장 크게 실망스러운 부분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듯한 의사결정 방식과 폐쇄적인 구조입니다. 조합원이 7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이라면 마땅히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는 투명한 대의원 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단 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수억 원에 달하는 조합비의 행방과 중요한 규약 개정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게다가 조합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임원 직책 수당 신설이라는 중대한 안건을, 투표 양식 하단에 잘 보이지 않게 배치해 슬그머니 통과시켰다는 정황은 소통의 부재를 넘어 조합원들을 기만한 행위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면서 내부적으로는 가장 비민주적인 밀실 행정을 펼친 셈입니다.
특히 회사의 급여를 그대로 보장받는 타임오프 제도의 혜택을 누리면서, 조합비에서 매달 1000만 원에 가까운 고액 수당을 추가로 챙길 수 있도록 법을 뜯어고친 것은 대다수의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박탈감을 안겨주는 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