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8월 23일) 밤 9시 30분에 KBS 역사스페셜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진짜 드라마 같더라고요.
아버지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된 친일파로 일본으로 도망갔고, 아들 우장춘은 거기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한국어 한마디도 못 하는 상태로요.
그런데 이 아들이 나중에 해방 후 식량난에 시달리던 한국으로 건너와서, 우리 농업의 기반을 만들어 준 영웅이 됐다는 거예요.
1945년 해방되고 나서 산은 텅 비고 식량은 모자라고, 쌀값이 1년 만에 12배 넘게 뛰면서 민생이 완전 난리였대요.
그때 경남 농무국장이 일본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육종학자를 찾아가서 “한국에 꼭 와 주세요”라고 설득했고, 우장춘이 그걸 받아들인 거죠.
1950년 3월 8일 부산항에 첫발을 디뎠는데, 가족을 일본에 남겨두고 혼자 온 거였어요.
일본에서는 ‘종의 합성이론’으로 박사 따고 세계적인 성과를 냈는데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승진도 제대로 못 하고 늘 외부인 취급을 받았대요.
그래도 조선 성씨를 버리지 않고, “이 땅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하면서 한국에 온 거예요.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일이 종자 자급이었죠.
우리 기후랑 토양에 맞는 품종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고, 한국전쟁 중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 결과 ‘원예 1호’ 결구배추를 시작으로 감귤, 감자 등 여러 품종을 개발했고, 1955년쯤에는 종자 자급의 기반을 만들어 냈어요.
그가 뿌린 씨앗이 후학들에게 이어져서, 지금은 우리나라가 신품종 1만 4천 개 넘게 출원하는 나라가 됐고요.
한국에 머문 시간은 고작 9년 남짓인데, 그 짧은 시간에 우리 농업의 기틀을 다져 준 거예요.
경계인으로 살았던 사람인데,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 그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 뭘 남겨 줬을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오늘 밤 역사스페셜에서 자세히 나온다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봐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 들으면 역사라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