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작은 비석 조각 두 개를 두고 학계에서 누가 이 비석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 비석 조각들은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한자 서체를 똑 닮았고 글자도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처음부터 큰 관심을 모았죠. 1937년과 2020년에 각각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이 두 조각이 최근 학술대회에서 함께 다루어지면서 학자들 사이의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왔어요.
논란의 중심에는 비석을 다듬은 기술적인 부분이 자리 잡고 있어요. 한 역사교육과 교수는 비석 표면이 매우 매끈하게 다듬어진 물갈기 기법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이는 5세기 고구려 비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지적했어요. 이 기법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나 정립되었기 때문에 제작 시기를 6세기 후반 이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죠. 반면에 서예사 전문가는 고구려 비석에서도 다듬질 흔적이 발견된다며, 5세기 고구려가 신라를 도운 뒤 세운 기념비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어요.
또한 중국계 장인이 종군해서 경주에서 직접 제작했을 것이라는 색다른 추정도 나왔어요. 당시 중국 남북조시대나 낙랑 지역에서는 매끈하게 표면을 다듬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중국 장인이 개입했다면 물갈기 표면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설명이에요. 반대로 신라인이 고구려 서체를 배워 직접 변용해 쓴 글씨라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비석의 주인을 둘러싼 담론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어요.
이번 논쟁은 단순히 돌조각 하나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5세기 무렵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중국 간의 복잡했던 교류와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신라의 왕성터에서 발견된 고구려풍 비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를 연구하는 데 아주 소중한 열쇠가 되어 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