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백범 김구 선생이 1947년 결성한 모임인 '보인계' 관련 자료를 번역·분석한 사료집을 발간하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1940년대 후반은 신탁통치 반대 운동, 남북연쇄회담 등 거대한 정치적 격랑 속에서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발간된 '보인계' 사료집 소식은 더욱 신선하고 뜻깊게 다가온다. 국가의 혼란기 속에서도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인덕을 쌓자(보인)'는 취지의 모임을 결성하고 규칙을 정해 자금을 모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단순한 정치인이기에 앞서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인격적 수양을 중시했던 선비들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기사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김구 선생의 친필로 추정되는 836자의 발견이다. 1938년 중국 장사에서 총격을 당한 후유증으로 평생 손을 떨며 글씨를 쓰셔야 했던 백범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 떨리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을 '보인계 절목'의 내지를 상상해 보면, 해방 정국의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지도자의 고뇌와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 가슴이 뭉클해진다. 완벽하게 수려한 명필은 아닐지라도, 그 떨림 자체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훈장이자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2015년에 자료를 확보한 뒤, 한문을 한 글자씩 해독하는 탈초 작업과 국역, 그리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약 이 자료들이 연구되지 않고 수장고에만 있었다면 우리는 김구 선생의 새로운 면모와 이봉창·윤봉길 의사 의거 자금의 명확한 증빙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교과서에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는 발굴과 연구를 통해 오늘날 새로워지는 현재진행형의 학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고마운 기사였다.
해당 기사를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다시 기억하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