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배려가 필요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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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을 가득 채운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제는 단순한 소음을 넘어 사회적 갈등의 격전지가 되었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 대다수가 '이해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의 날 선 공방은 우리 사회가 처한 서글픈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정서는 '손해 보기 싫다'는 심리다. 내가 지불한 비용에는 쾌적한 환경에 대한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는 타인의 불가피한 사정을 '나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며 넘기던 관용의 영역이 이제는 '내 돈 내고 왜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날카로운 권리 의식으로 대체되었다.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분노와 효율성뿐이다.
"통제가 안 되면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이를 기계처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아이는 변수가 가득한 존재이며, 아이의 울음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내는 필연적인 '성장통'이다. 이를 제거해야 할 소음으로만 규정하고 부모를 죄인 취급하는 문화는 결국 육아 가정의 사회적 고립을 정당화한다.
아이를 다 같이 키우는 사회는 단순히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는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아이'라는 소유권의 울타리를 낮추고 '우리 사회의 아이'라는 공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육아의 고충을 한 가정의 사적인 불운으로 치부하지 않고, 구성원 전체가 감당해야 할 공통의 과업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웃집 아이가 울 때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신 "애 키우느라 힘드시죠?"라는 짧은 위로를 건네는 용기가 공동체의 복원을 이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평온함을 빼앗긴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가장 값진 '투자'다. 아이가 환대받지 못하는 곳에서 자란 아이는 타인을 환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우리가 오늘 식당에서 보여주는 작은 인내는 훗날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를 돌볼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교육이 된다.
분노가 어디까지 닿을 것인가 묻는 질문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는 서툰 부모와 우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팍팍한 사회 구조로 향해야 한다. '민폐'라는 잣대를 내려놓고 타인의 미숙함을 잠시 눈감아줄 수 있는 헐거운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소음이 아닌 생동감으로 들리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각자도생의 정글을 벗어나 사람이 사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