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치료제에 대한 학생들 호기심이 커져서 약물 오남용 교육까지 했습니다.”
수도권의 한 여자중학교 상담부장 ㄱ 교사는 지난달 전교생을 대상으로 마운자로·위고비 등 비만치료제 오남용 예방 교육을 진행해야 했던 경험을 전했다. 하루 ‘0끼’를 도전 과제로 삼고, 음식을 먹고 토하는 ‘먹토’가 등장할 정도로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일부 청소년 사이 유행하던 상황에서, 비만치료제까지 선풍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탓이다. ㄱ 교사는 19일 한겨레에 “부작용도 걱정되지만, 비만치료제가 청소년 사이에서 손쉬운 선택지처럼 소비되면서 정상 체중인 아이들까지 자신의 몸을 바꿔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게 되는 게 더 걱정”이라며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더 커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비만치료제 오남용 우려가 청소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상 체중인데도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청소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 이어지고, 학교 현장에서도 오남용을 우려하며 대응에 분주한 모습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기준을 보면 위고비는 12살, 마운자로는 18살 이상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별다른 처벌 규정은 없어, 미성년자에 대한 처방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실정이다.
다이어트 정보 등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호자 동의 없이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청소년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문의글에는 소위 ‘마운자로 성지’(마운자로를 쉽게 처방해주는 병원) 정보는 물론, 불법 유통 홍보 댓글까지 달리고 있다. 실제 한 홍보 댓글을 눌러보니 익명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됐는데, 작성자는 본인이 처방받은 약을 양도한다며 일대일 채팅을 유도했다. 비만치료제를 개인 간에 불법 거래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큰 ‘가짜 약물’에 노출될 위험성도 커 보였다. 섭식장애 상담전문가인 김윤아 ‘나를 만나는 시간’ 심리상담센터 대표는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한창 유행일 때는 청소년들이 대리 구매를 통해 약을 구하는 게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그런 문제가 이제는 비만치료제로 옮겨간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비만치료제 열풍이 청소년들 사이에 이미 퍼져 있는 ‘마른 몸’ 강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서울의 한 여자중학교에 다니는 장효주(15)양은 “급식을 거르고 포도 몇알만 먹으면서 살을 빼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값) 120이 당연한 미의 기준이 돼, 거기에 못 미치면 스스로 뚱뚱한 몸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 사이 외모에 대한 강박을 뜻하는 ‘외모 정병’이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쓰이고, 체중 등 외모 기준이 또래 사이 위계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게 장양 설명이다. ㄱ 교사는 “비만치료제가 사회적으로 ‘기적의 약’으로 통용되는 상황에서 청소년이라고 사용하고 싶지 않겠느냐”며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확산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마른 몸만을 이상적인 체형으로 여기는 인식 자체를 개선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윤아 대표는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은 청소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만들어온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 있는 현상”이라며 “다양한 몸이 존재할 수 있고, 몸이 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교육이 학교와 가정에서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청소년들은 섭식장애 등을 겪더라도 이를 감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가 가족과 식사하는 것을 피하거나 먹는 일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보이는 경우, 짧은 기간 안에 체중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경우 등 위험 신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