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청년 국가 폭력에 평생 고통…심각성 알려야 해요”

애니메이션 감독 전승일 씨가 37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재심 공판을 시작했다. 그는 1980년대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제작 참여로 기소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이후 강제 연행과 구금 후유증으로 PTSD와 공황장애를 겪어왔다. 전 씨는 1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늦었지만 진실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말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국가보안법에 당하면 한 사람 마음속에는 평생의 낙인이 찍혀요. 그게 너무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1989년 6월30일.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은 갑오농민운동부터 1980년대 민주화 운동까지 민족사의 주요 순간을 11폭 그림에 담은 총 길이 77m의 초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보기 위해 몰려든 학생으로 가득 찼다.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민미연)과 전국대학미술운동연합(학미연) 등에 소속된 화가 200여명이 그렸다. 당시 학미연 대표였던 전승일 감독도 그림 제작에 참여했다.

민족해방운동사가 내걸린 캠퍼스는 그날 오후 최루탄과 함께 전경, 백골단이 들이닥치며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전 감독은 현장에서는 탈출했지만, 며칠 뒤 잠복하던 안기부 요원에게 잡혀 얼굴에 검은 천이 씌워진 채 끌려갔다. 서울 남산 안기부 수사실이었다. 19일 동안 가혹한 취조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전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달 27일 전 감독은 서울중앙지법 재심 법정에 섰다. 그동안 수십 편의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는 등 경력을 쌓아온 전 감독은, 남산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이기도 하다. 지난 1일 전 감독을 만나 40년 가까이 그를 괴롭혀 온 국가 폭력의 고통과 재심에 나선 이유를 들었다.

 

■ 이적행위자가 된 스물넷 미대생

1989년, 스물네살이던 전 감독이 남산에서 겪은 취조 과정은 끔찍했다. 당시 대공 수사관은 걸개그림을 북한 지령을 받고 그린 그림으로 몰아 가려 했다. 전 감독이 이를 부인하면 얼차려를 받거나 갖은 폭언과 모욕을 들었다. ‘지인을 잡아들이겠다’는 협박도 이어졌다. “여기는 국회의원이 와도 피똥 싸는 곳이야. 네까짓 것 없어져도 아무도 몰라.” 전 감독이 전한 당시 수사관의 말이다. ‘이적행위’라는 황당한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공소 검사였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쓴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민족해방운동사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 도울 목적으로 제작한 표현물(이적표현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에서 소견서를 제출한 고 성완경 전 인하대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서 우리 민족이 처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그러한 민중의 정서를 훌륭하게 형상화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며 “민주사회를 염원한다는 것만으로 북한의 주체사상과 동일한 시각을 가졌다고 판정하는 것은 사실 반민중적인 자신(국가)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유죄였다.

그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법원 판단과 달랐다. 민족해방운동사는 작품성과 시대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민중미술 15년’ 전의 작품으로 전시됐다. 전 감독은 지난 2006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서 민족해방운동사를 제작하고 전시한 행위로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되기도 했다.

1989년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던 전승일 감독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구토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전승일 감독 제공

 

■ 끝나지 않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세상은 민족해방운동사의 의미를 이야기했지만, 1989년 남산의 기억은 이후로도 전 감독을 따라다녔다. 1992년 학과 모꼬지(엠티) 날, 버스 안에서 트라우마가 시작됐다. 밀폐된 공간에서 연행 과정을 떠올렸고, 취조실에서처럼 구토가 올라왔다. 이후 전 감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정동장애를 진단받았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2주가량 정신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공포와 불안의 항시적 재경험”은 자연스럽게 몸의 고통으로 전이됐다. 전 감독의 건강은 진료의 표현에 의하면 “신경 계통이 전반적으로 붕괴한 상태”다. 얼굴 등 전신에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이번 재심 신청 계기 중 하나도 승소 판결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치료비를 받기 위해서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꼬리표는 전 감독 경력도 자주 가로막았다. 30대 초반, 지방의 한 대학교에 정식 교수로 임용됐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 전력이 알려진 뒤 임용이 취소됐다. 재작년에도 한 미술관에서 “전 감독을 검색하면 보안법 관련 내용이 나와 관람객이 싫어한다”며 전시 취소를 통보받았다. “이해는 합니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네요.” 전 감독은 짧게 그때 심경을 말했다.

하지만 전 감독은 예술가답게, 예술의 형식으로 국가 폭력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5·18의 기억, 상처와 치유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오월 상생’이나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고양시에서 경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다룬 ‘금정굴 이야기’ 등을 만들었다. 예술은 치유의 수단이기도 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게 잘 표현되면 거기서 얻는 뿌듯함이 있거든요. 제가 평범한 직업인이었으면 지금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을 거예요.”

“국가보안법이라는 낙인을 지우는 것. 아들과 홀어머니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 정신적·신체적 피해보상을 위해 국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는 것.” 전 감독은 재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여러 가지를 읊조리다, 가장 큰 바람을 전했다. “지금도 국가폭력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평생을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릴 필요가 있어요. 국가폭력에 대한 문제는 제 영원한 작품의 주제일 것 같아요.”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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